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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관정도서관 서재

[도서리뷰] 축구철학의 역사: 되게 재미없는 철학 핵심교양

첫 장을 펴자마자 오잉, 번역가가 첫 머릿말을 썼네. 아무리 작가와 번역가가 함께 쓴다고는 하지만, 느낌과 감정을 전달하는 인문학 책에서나 통용되는 말이고, 이런 사실관계 위주로 전달되는 책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작가를 전방에 배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구시길래...하고 찾아봤더니 축구 동호회에서 기술고문을 맡고 있는 학원 강사님이시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학생회장으로 입후보할 배짱은 없고, 한 자리 할 수 없을까 해서 맡았던 게 "선거관리위원회"였다. 세 후보 가운데서 나는 마치 학생회장인양 설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런 실수를 다시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어렸을 때 했던 실수이니 좀 더 각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요지는 내가 나서야 할 때와 서포트에 머물러야 할 때를 잘 구분해야겠다는 다짐이다.

 

 책을 읽어봤더니 번역 자체는 상당히 잘 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사실관계 위주로 전달되는 책들은 아무래도 번역투로 인해 어색하기 쉽지만, 한국어로 된 교양수업을 받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너무 재미없는 교양수업이라는 것이다. 축구철학의 역사에 대해서는 확실히 길게 설명해주는데, 핵심에 도달하기까지 너무 오래걸린다. 핵심이 있긴 한건지도 의문이다. 바르셀로나는 어떤 철학을 가지로 구단이 운영되었는지, 그 장단점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카탈루냐어부터 배우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그런 재미없는 교양수업이 그렇듯, 몽땅 읽었을 때 남는 키워드들이 있다. 그런 키워드들로 "너 이번 학기 어땠어?" 하는 질문에 "세계 축구 역사를 한 번 훑었어" 하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축구의 시작을 알려주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골키퍼가 어디까지 공을 손으로 잡고 나올 수 있는지 정립이 안되어서, 하프라인까지 공을 잡고 나오던 사람이 있었다는 둥, 1800년 대 중말에 규칙이 처음으로 제정되던 시기에는 럭비와 구분할 수도 없었다는 둥, 팀마다 규칙이 달라서 홈코트 어드밴티지가 확실했다는 둥 (홈 구장의 룰을 따라야 해서 어웨이 구장이 항상 불리했다). 

 

 그래도 글이 너무 장황해서 읽기 힘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웃겼던 것은, 책을 휘리릭 훑었을 때 중간중간 포메이션이 그림으로 그려져있는 것을 보고 "아 전술을 그림으로도 설명해주는군!" 하고 좋아했었는데, 정작 책 내용과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해당 문단에서 설명하는 경기의 스타팅 라인업을 그려놓았을 뿐이다. 아, 핵심교양이었으면 억지로 다 듣고 남는 키워드들이 있었을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