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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뇌 속 풍경

"저는 돗자리를 팔고, 아우들은 술을 팔거나 돼지를 잡는 일을 합니다" - 유비에게서 배우는 대학원생의 자세

 넷플릭스 드라마 삼국지를 즐겨보고 있다. 초반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한나라의 왕조를 손에 쥐고 제 멋대로 통치하고 있는 인물(동탁)을 처단하기 위해, 각 지역의 유지들이 모여 동맹의 결의를 다지는 자리에, 유비가 관우 장비와 함께 동맹군에 가입하고자 나타난 것이다. 


 지역의 유지들은 유비 관우 장비를 물론 처음 보는 상황이다. 유비가 "저는 한나라 왕실의 후예입니다" 하고 소개를 하지만 믿어주는 사람도 없다. "관직이 무엇인가?" 하는 동맹군 대장의 질문에 유비가 답한다. "시골에서 사는 지라 관직은 따로 없고, 저는 돗자리를 팔고 아우들은 술을 팔거나 돼지를 잡는 일을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지역 유지들은 기가 막혔다. 듣자듣자 하니, 도대체가 세상 별 볼일없는 사람인 것이다. 당장이라도 내쫓으려는 것을, 조조가 나서 "당대의 영웅들 앞에서 저렇게 태연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포부가 대단한 사람인 듯 합니다" 라고 중재를 해줘서 겨우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동맹군의 장수들을 쓸어내던 적장을,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리다" 하고서는 단칼에 해치운 뒤, 모임에서 드디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사실 중국 드라마는 표준 중국어와 각종 방언들에 대사를 맞추기 위해 더빙을 한 티가 상당히 많이 난기 때문에 몰입해서 보기 힘들다. 게다가 삼국지는 내용을 얼추 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몰입하기 힘든 드라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중간 중간 나오는 장면들이 가슴을 웅장해지게 하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도(링크) 서술한 바 있지만, 나를 채찍질하는 원동력은 질투이다. "너가 하면 나도 한다" 하는 심보로 좀 더 열심히 해보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던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남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택배 알바를 하면서도(링크) 현장의 아저씨들의 안하무인적 태도가 힘들었던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유비처럼,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웅대한 꿈이 있다는 태도로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소설 싯다르타에서처럼(링크) "할 줄 아는게 무엇이오" 하는 질문에 "생각을 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고, 단식할 줄 압니다" 하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태도를 배울 수 있을까? 수 차례 관련된 글을 써왔지만, 아직도 상당히 힘에 부친다.


아이실드21 19권에서 발췌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관련 글) 세 팀의 경쟁 끝에 최종적으로 우리 연구실에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우리"라는 말이 어색한 이유는, 내가 참여한 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확실히 축하할 일이고, 신입생인 나로서는 참여하지 않은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괜히 질투심과 조바심이 난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연구를 하세요?" 같은 질문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이런 저런 연구를 멋지게 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연구 보조를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고 당당히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보면 "그땐 그랬지" 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때도 질투심에 나를 채찍질하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이 어떤 길을 가든, 나는 나만의 길을 개척해내겠다는 자신감으로 변해가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