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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뇌 속 풍경

중학생을 상대로 대학생/대학원생의 멘토링이 의미가 있을까?

 중학생들을 길거리에서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이불킥이 절로 나오는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관련 글). 그런데 막상 한 테이블에서 같이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때의 나와 화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역시 말도 안되는 일이다. 여전히 불쑥 불쑥 찾아오는 이불킥의 기억들 때문에 고통받았다.


 학내에 붙은 플래카드 등의 홍보를 통해서, 시흥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학내 대학생/대학원생들의 멘토링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차례 면접을 진행한 후 어제(7월 3일 토요일)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오리엔테이션이 채 10분도 지나기 전에 깨달았다. 여기 앉아있으면 안되겠구나.

멘토링 프로그램 "스누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박수를 누구보다도 빨리, 오래, 크게 치거나 대중을 향한 질문에 크게 응답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정말 중학생이 맞는지 깜짝 놀랄만큼 세련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한 학생도 있었다. 정말 다양하구나! 학교 연구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있다보면 새삼스러운 사실에도 놀라게 된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아유 귀엽당" 하는 마음을 가질 처지가 못된다. 오히려 정신이 혼미해진다. 소뇌부터 척수를 따라 차가운 액체가 흘러가는 느낌이 들며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가는 것이다. 이유는 오직 하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딱히 어린 시절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부끄러워 하는 순간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이다. 중학생들을 보며, 보다 나이가 많던 내 과거를 부끄러워 한다는 사실이 더욱 괴롭다. 나는 왜 부끄러워야 할 때 부끄럽지 못했을까...

 

 굳이 이런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 나를 몰아세울 까닭이 있는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마땅한 답은 없다. Global Optima를 향한 Exploration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먼길을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가 가진 증상들-심각한 이불킥들은 분명히 손을 봐줘야 하는 것들이다. 계속해서 외면하면서, 한숨으로 덮어왔던 과거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진로멘토링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일은 사실 많지가 않다. 학생들에게야 “뭐든 좋으니 고민해보고 알려주렴” 하고 큰소리 쳤지만, 사실은 나도 내 앞길을 잘 모른다.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하는 생각으로 멘토링을 지원한 것이다. 하지만 멘티된 입장에서는 그런 건 멘토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게다가 내게 배정된 두 명의 멘티들은 모두 하고 싶은 일이 구체적이지가 않았다. 난 어땠던가? 나는 책이나 영화를 볼 때마다 되고 싶은 것이 바뀌는 사람이었다. 사실 “커서 뭐가 되어야지” 같은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것이고, 그런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게 그렇게 좋을 것 같지도 않다.


 친해진 다른 멘토분은 사범대 4학년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는 것을 위주로 멘토링을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었다. 새삼 맞는 말이라 또 놀랍다. 삼국지의 유비로 따지자면,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에게 "나는 내 집 마당에 있는 뽕나무만큼 거대한 수레를 타고 다닐거야" 라고 말하며 다녔다고 했더랬다. 가슴에 웅대한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그 꿈을 향해 갈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부터 멘토링을 받아야 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