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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관정도서관 서재

[도서리뷰] 파워포인트 대신, 6장의 보고서 - 제프 베조스, "발명과 방황"

 스티브 잡스가 떠난 현재,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를 꼽으라면 제프 베조스와 일론 머스크가 후보에 오른다. 제프 베조스는 이제 아마존에서 사임하는 나이가 되었고(1964년 생이다),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 삼매경에 빠지며 입지가 급속도로 추락하는 국면이니, 새로이 스타트업의 영웅이 선정될 차례인가 싶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아직 아마존의 황금기는 오지 않았구나!


 

 거창한 소개문구로 글을 시작했지만, 사실 이 책은 베조스가 쓴 책이 아니다. 오히려 베조스가 "말한" 책에 가깝다. 베조스의 연설문들과 주주서한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속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베조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다. 

 

 연설문과 주주서한은 분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는 동안, 내용이 뚝뚝 끊어질 수 밖에 없고, 한 번 읽었던 내용이 다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아마존의 정신은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다른 중요한 내용도 많지만, 내 관심을 잡아끈 사항은 아마존에서 파워포인트 대신 6장의 보고서로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2017 아마존 주주서한

 

 2017년 아마존 주주서한에 짧게 언급된 내용이다. "높은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파워포인트가 아니라 6장 짜리 보고서로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 회의를 좀 간소화시키려고 그러나보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6장 이내의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사람들은 적게는 며칠부터 많게는 몇 주간 준비를 해야 한다.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발표자료를 읽으며 상황을 파악해본 사람은 알 수 있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는 제대로 된 정보가 담기기 힘들다. 발표에는 비언어적 표현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스크립트가 포함되지 않은 슬라이드라면 제대로 된 언어 표현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정보의 원활한 공유를 위해서 문서화된 자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6 pager의 구성

 보고서가 어떻게 작성되는지는 쉽게 공개되지 않는다. 아마존의 회의 내용이 담겼으니, 예시조차 유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대신, 어떻게 작성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마존을 거쳐간 숱한 사람들이 글을 통해 공유해놓았다. 아마존에서 5년간 근무했던 사람이 성심성의껏 작성한 글(링크)에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다. 간단히 말해 짧은 논문을 쓴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어떤 상황에 대한 보고서인지 간략한 소개와, 보고서의 목적, 보고서의 접근 방식(Approach), 상세한 현황(Method), 그간의 성과 (Result)와 추가 논의사항(Discussion) 이다. 논문은 한 번도 써본 적 없지만, 숱하게 읽어왔으니 이 정도 구조는 눈에 쉽게 들어온다는 것은 엄청난 허위사실이고, 눈이 빠져라 읽어야 이해가 될까 말까이다. 매 회의가 전쟁같겠구나, 새삼 놀랍다.


 나로서는 매일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이렇게 정진하고 있다만,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잘 짜여진 글을 쓰려는 노력은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글을 쓰는 것도 물론 굉장히 중요한 습관이겠지만, 그만큼 또 중요한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일테다. 매일 쓰는 글은 그대로 두되, 장기프로젝트를 한 두 개씩 진행하면서 긴 글을 써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