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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관정도서관 서재

[도서 리뷰] 볼품 없는 티셔츠에 관한 매력적인 글 - 무라카미 T

 나온 줄도 몰랐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신간을 친구가 선물해줬다("고마워!").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는 한 번 읽은 것을 나중에 또 읽어도 재밌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 웬만하면 중고 서점에서 눈에 들어오는 대로 사는 편이었다. 그런데 신간새 책으로 읽을 수 있다니. 성공한 삶이다. 


 "왜 내 주위 남자들은 이렇게 하루키를 좋아하지" 하는 일반화에 휩쓸리게 된 가슴 아픈 경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침착맨 유튜브에서 가족나들이(유튜브)를 하건, 새벽에 칼싸움을 하건(유튜브) 냉큼 달려가서 시청하듯이, 하루키만 나오면 안 읽고서는 못배기는 것이다. 나에겐 이게 미스터트롯이다~ 이 말이야. 

 그 동안 하루키의 에세이가 본인 생각을 단편적으로 기술하는 내용들이었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모으듯이 사 둔 티셔츠에 관한 글을 아주 본격적으로 써뒀다. "티셔츠같은 걸 모으다니, 상당히 한가하군" 하고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맞는 말일테다. 중고매장에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마음에 드는 티셔츠(나름의 기준이 있다)를 고르는 것이 취미라고 하니, 시간이 많지 않고서는 못할 것이다.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1987년 노르웨이의 숲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후로 하루키의 글쓰기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적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1949년 생이라는 점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40~50대 언저리의 중년 남성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티셔츠에 관한 글들도 그렇다. 글 스타일은 둘째치고 소개되는 티셔츠들도 캐주얼 그 자체이다. 길거리에서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1949년 생 선생님이 위와 같은 티셔츠를 입고 지나간다면 분명히 한 번 더 뒤돌아볼 테다. 

 

 지금의 나로서는 깔끔한 옷을 좋아하는 편이다. 평소에 깔끔하게 입어두면, 가끔씩 멋내고 싶을 때(자주 오지는 않는다) 별로 티내지 않고 멋을 낼 수 있어 편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볼품없어 보이는 티셔츠를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소개하는 글을 읽다보면 "캐주얼한 티셔츠도 괜찮겠네" 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나도 중고 티셔츠를 한 번 입어볼까나. 


나에겐 이게 티셔츠다

 

 나는 주머니 사정도 있고 하여, 물건을 수집하는 것에는 최대한 흥미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와중에 유일하다시피 사모으는 것들이 있다면 앞서 말했던 하루키의 에세이들이지만, 그마저도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느냐 하면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내가 정말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나도 이걸로는 에세이 한 편은 너끈히 쓰겠다" 싶은 것이 있다면 위 세 권의 책이다. 하루키(또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1~2권과 브라이언 그린의 "엘레건트 유니버스"이다. 내 삶의 지도라고 할 수 있는 책이라서, 이러쿵 저러쿵 할 이야기도 많지만 딱히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는 아닐테다. 게다가 오히려 "오 나도 그래" 하고 공감을 얻는다면, 그것 나름대로 난감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쯤은 이러쿵 저러쿵 마음껏 떠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내가 어떤 지도를 들고 살아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