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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뇌 속 풍경

이불킥이 심각한 정도라면, 침대맡에 샌드백을 둬서 운동효과를 얻자

유튜브 침착맨 채널에서 "왕십리로 날아온 편지"를 즐겨 듣고 있다.

운동을 하면서도 듣는데, 웃느라고 운동할 힘이 빠질 정도이니

마스크로 웃고 있는 것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다행일 정도이다.


시청자들의 사연을 읽어주면서, 침착맨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전형적인 라디오 구성인데

"창피한 일들이 너무 많아요" 하는 사연이 소개된 적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창피했던 생각을 떠올리며 자기 혐오에 빠진다는 시청자 사연에

"어라 내 얘긴가?" 하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나야말로,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한숨을 푹푹 내쉬곤 하는데

나를 괴롭히는 기억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좀 글로 남겨볼까? 얼마나 창피한 경험인지 써보자.


1. 직장에서 녹취를 걸렸다.

사실 이 경험은 그렇게 창피하지는 않다. 

"아하하! 미친 놈" 하고 나조차도 배꼽잡는 사연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희한한 이유로 팀장님으로부터 쿠사리(면박, 이지만 입에 너무 달라붙는다)를 받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 이런 상황을 좀 기록해두면 나중에 재밌겠다' 하는 생각을 했고

휴대폰 녹음을 켰다.

 

한창 녹음을 하던 중, 팀장님이 하필 내 자리로 와 있던 순간에

공간을 만든답시고 휴대폰을 뒤집으면서 화면이 저절로 켜졌다.

녹음 중이던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이거 뭐야?" "얼레? 40분째 녹음 중이네"

"아이코 잘못 눌렀나봅니다" 하고 호다닥 휴대폰을 챙겨넣었는데

희한하게 유아무야 잘 마무리 되었다.

아마 나를 포함한 모두가 당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 술을 뱉다가 걸렸다.

이 기억이 최근 몇 달간 나를 아주 지독하게 괴롭히는 놈이다.

악질이다 아주. 어후 징글징글해.

대학교 1~2학년 쯤 되었을까, 술을 많이 마시는 학과 분위기

억지로 또 술을 마시던 와중이었다.

 

바로 옆에는 술을 잘 못마시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술(소주)을 입에 머금은 채 물을 마시는 척 하면서 뱉고 있었는데

본인이 자주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 친구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내 만행을 목격하자마자 친구는 웃으면서 나를 툭 쳤고,

나는 그길로 일어나서 물컵의 내용물을 화장실에 버리곤 다른 테이블로 사라졌다.

 

모른 척 좀 해주지...

 

술 뱉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투명한 컵에 뱉는 것을 주의하도록 하자.


 

3. 발표 수치플

지난 번에도 관련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오늘 또 그랬다.

연구실 주간보고를 하는 날이었는데

"어제 처음 오셨으니까 별로 말씀하실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정리해서 말씀하시겠어요?"

라는 말에 주절주절,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몇 문장 얼버무리고 나니, 웬 걸, 사람들이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이었다.

'아, 너무 애송이 같았는갑다' 하는 생각이 들자, 그 이후로 한 시간 정도는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아무리 '그래, 애송이 맞지 뭐' 하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언제쯤 애송이 티를 벗는 거지?' 하는 끝없는 자기 혐오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갔다.


"아 오늘 창피한 일들 글로 쓰려면 잠은 다 잤다" 했는데

의외로 글로 풀려고 하니, 그렇게 창피한 일들도 아닌 것 같고,

심지어는 오늘 있었던 일조차도 별 게 아닌 것 같다.

 

어라? 하는 마음에 지난 번 발표 수치플 경험을 떠올려봐도

그냥 그럴 수 있는 일 같다.

이거 참, 이게 글의 힘인가?

 

'이불킥이 심한 사람'에 대한 침착맨의 조언은

"사람들 대부분 그럴 것 같아요. 제 생각에도 이불킥은 답이 없어요.

그렇다면, 침대맡에 샌드백을 둬서, 이불킥을 할 때 마다

이불이 아니라 샌드백을 찬다면 어떨까요?

이불킥은 어쩔 수 없지만, 운동효과라도 가져보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였다.

 

참 머리를 탁 치는 조언이 아닐 수가 없지만,

글로 풀어서 써보고, 요리조리 살펴보면서 객관화 하는 것도

끝없는 자기 혐오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