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트렌드 한눈에 보기/산업 트렌드

2023 국제 병원 및 헬스테크 박람회 (KHF, 코엑스) 방문 후기

박람회를 다녀와서 이렇게 혼란스러운 경험은 처음이었다. 


장사진을 이룬 박람회장. 디지털 헬스케어과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는구나 했는데, 알고보니 웨딩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에 헬스테크 박람회를 다녀온 이유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현황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이 잘 하고 있고, 디지털 헬스케어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더랬다. 하지만, 직접 방문하여 느꼈던 점은 몇 안되는 기업들이 서로 유사한 기술을 가지고 경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각 기업이 가진 비전이 어떤 건지, 사람들은 어떻게 더 건강하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잘 와닿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1. 에이치로보틱스 vs. 헥사휴먼케어: "각도만 측정하면 재활은 끝나나요"

근골격계 질환에는 재활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제대로 재활을 꾸준히 진행하는 환자는 정말 드물다. 환자를 모집하는 실험에서 자가치료를 진행하는 환자들 중 47%는 재활운동을 중단했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인데 [1], 실험 모집군에서도 참여율이 이렇게 떨어진다면, 실제로는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재활 로봇들이 많이 등장한다. 자가치료는 참여율이 떨어지고, 인간치료사는 비용이 부담스러우니, 로봇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에이치로보틱스와 헥사휴먼케어는 모두 재활 로봇 기업들인데, 이번 박람회 때 느꼈던 것은, 두 기업의 차이점이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에이치로보틱스는 위 사진에 등장한 "리블레스"라는 한 대의 로봇으로 네 가지 관절 (발목, 무릎, 팔꿈치, 손목) 을 재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로봇 재활이 인간 치료사를 대체할 수는 있겠지만, 자가치료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두 로봇 모두 측정하는 지표는 관절의 이동 각도 뿐이다. 통증 정도, 관절의 유연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정성 평가일지라도) 인간 치료사들에 비해 데이터 종류도 덜할 뿐더러, 작동이 그렇게 간단해보이지도 않는다. 박람회장이라면, "환자들이 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런 저런 방식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습니다"  하는 설명을 기대했는데, 웬걸, 이 기기는 각도를 측정해줍니다 하고 설명이 끝나는 것이다 (헥사휴먼케어 담당자님 보고 계십니까?). 나는 이런 자리가 생기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싶었다.

 

2. 에버엑스 vs. 아이픽셀: "신체 각도를 쟀습니다. 그 다음은요?"

이번에는 운동과 관련된 스타트업들이다. 물론 앞선 두 기업도 재활 운동이긴 하지만, 이번 두 기업은 하드웨어가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 카메라를 기반으로 신체 각도를 추정해주는 형식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YOLO를 활용한 human pose estimation

그런데 이런 기술은 사실 오픈소스로도 구현이 충분히 가능하다. 위 이미지는 한 장에 들어간 여러명의 관절 각도를 뽑아낸 결과를 담고 있는데, 역시 오픈소스 (yolo v5)로 구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술 자체보다는 역시 사업성에 중점을 두고 기업을 평가해야 할 것인데, 에버엑스의 경우에는 디지털 치료제로서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새롭게 안게 된 사실은 디지털 치료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동일 질병, 동일 처방"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릎 질환에 한정하여 재활 프로토콜을 세밀하게 만들어서는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라는 것으로 확인했다. 나중에는 좀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을 테다. 

 

 재활 운동을 별 하드웨어 없이 디지털로 처방받아서 카메라로 진척을 판단할 수 있다면 상당히 희망적인 내용이지만, 역시 앞에 말했듯 자가재활운동의 핵심은 "동기부여"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환자들이 더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까? 단순하게는 "통증"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통증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가치료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율이 50%에 달한다는 것은 모니터링 이상의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군대에 있던 2015년 시절이었던가, 한국기계전이라고 하는 킨텍스 박람회를 찾아가서는 기계공학 복수전공의 꿈을 키웠더랬다. 기계를 만들고, 자부심을 갖고 설명하는 모습에 반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이번 박람회에서는 참가자들로부터 그런 열정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를 나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극에 있다고 생각했다. 만드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고, 타겟 고객은 노년층이다보니 "뭐 이런 제품이에요" 하고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일수록 "우리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게끔 노력할 것입니다" 하는 비전을 제시해주는 기업을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제일 아쉽다. 어쩌면 그런 산업이 아닌 게 아닐까, 하고 혼란스러웠던 방문 후기였다.

 

참고문헌

[1] Tanaka et al., "Joint mobilization versus self-exercises for limited glenohumeral joint mobility: randomized controlled study of management of rehabilitation",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