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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뇌 속 풍경

자가격리시설의 하루 - 대학원생의 경우

TLDR: 자가격리시설로 들어갈 때는, 챙길 것을 꼼꼼이 모조리 챙긴 뒤 들어가세요

 

 아침에 볼 일이 있어서 느지막이 연구실로 출근했다. 11시 30분쯤 연구실로 도착했을 것이다. 잠시 메일을 정리하고, 어제 하기로 했던 디버깅 방법론을 도입하던 찰나, 연구실에서 공지사항이 울려퍼졌다.

 

 "잠시 중앙으로 모여주세요-"


 요지는 이러했다. 현재 두 개의 방으로 나뉜 연구실 중, 반대편 연구실(A연구실이라고 하자)에서 확진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사람이 나왔다는 것이다. 내가 있던 연구실(B연구실)은 결과적으로 당사자와 접촉한 경우는 없지만, A연구실의 다른 사람들과 활발하게 소통을 해오던 사람이 있어서 위험하다. A연구실은 현재 모두 퇴근 및 자가격리 조치를 시행했으니, B연구실 역시 즉시 퇴근하며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출근 한 시간만에 짐을 싸게 되었다. 디버깅은 방으로 가서 해야겠구나- 하면서 재료들을 챙겨나왔다. 해당 재료들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케이블을 두고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코로나 검사를 받은 뒤, 기숙사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갈 곳이 막막했다. 그 때 마침 공지가 추가로 올라온 것이다. "기숙사생들의 경우 자가격리장소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기숙사에서 운영하는 자가격리장소가 있었다. 어라? 나름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잖아? 하면서 룰루랄라 이동했다. 2인실인 현재 기숙사보다는 1인실로 운영될 자가격리장소가 더 낫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서울대 기숙사 자가격리실로 활용되는 BK생활관

 

 그렇게 격리장소인 BK생활관으로 이동했다. "열은 없으시죠?" "예" "아유 하루만 참으시면 되겠네요." "아 예ㅎㅎ" 이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를 지낼 공간으로 들어왔고, 시설은 내 생각보다 좋았다. 관리인은 직접 방까지 들어와서 이것 저것 알려주셨고 '아 나 같은 가짜 격리자들도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또배기 격리자들만 있었다면 이렇게 안일하게 방역을 지키지는 않았을테니.

 

 방으로 들어와서 기껏 들고왔던 재료들을 사용할 수 없음을 깨닫고(케이블의 부재) 다른 할일을 좀 하다가 "음 이제 남은 짐을 좀 가지러 잠시 나갔다 올까" 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러고 방문을 살짝 열었다가 "나오시면 안돼요!" 하는 혼쭐을 받고 냉큼 문을 닫았다.

 

 어라?

 

 안일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들어올 때는 자유로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하는 분위기로 바뀌어있었다. 게다가 아까 설명으로서는 밀접촉자가 확진이 나느냐에 따라, 나의 음성 여부에 상관없이 14일 자가격리에 돌입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때까지 못나간다는 것인가? 배달음식도 안된다는데, 삼시세끼 도시락만 먹으면서 지내야 하나?


 그런 답답함도 온데간데 없이, 금세 또 적응해버렸다. 이렇게 된 거 푹 쉬자! 하는 마음이었다. 도시락을 챙겨먹고(나름 맛있고 푸짐하다) 방에서 홈트 영상을 보면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나니, "이래서 홈트 홈트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방에서 혼자 있다면 나도 홈트 가능했겠다. 하지만 기숙사 같은 공간에서는 어림도 없지. 자가격리 시설이니까 해주는 거야.

 

친구가 챙겨준 비상식량으로 가득찬 냉장고

 

 친구가 저녁에 가져다준(관리인을 거쳐서 들여왔다) 비상식량으로 냉장고까지 채우고 나니, 이거 일박이일로만 나가긴 아쉬운걸 하는 몹쓸마음까지 들었다. 오늘로서 휴식을 마무리하고 내일부터는 다시 연구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내일 코로나 검사가 음성으로 나온다는 전제 하에...

 

 그나저나, 내일 새벽 4시에 하는 레알마드리드 vs 리버풀 경기를 일찍 일어나서 봐야하나 생각이 든다. 이거 어차피 자가격리인데 무리 한 번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