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의 Conor Walsh 교수에 대해서는 지난 글들에서 수 차례 소개한 적이 있다(관련 글). Biodesign Lab이라고 이름 붙인 Conor Walsh 연구실은 소프트 로봇, 소프트 엑소슈트, 의료 기기 등을 연구한다. 쉽게 말해 내가 속한 연구실과 동일한 분야를 연구한다.
해당 연구실에는 Ignacio Galiana라고 하는 연구원이 한 명 있다. 박사를 졸업한 뒤 포스트닥터로도 꽤나 오래 근무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창업을 했다는 소식을 교수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어떤 창업을 한 건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 하버드에서 박사를 따도 창업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하고 Galiana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졌더랬다. Stealth mode라고 하여, 일부러 외부 공개를 하지 않고 연구 단계를 가지는 스타트업이 있다는 것은 나중에나 알게 되었다. 어디 말할 거리는 못되니 조용히 준비하겠다~ 싶은 건데 기어코 소문이 나버릴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지내기를 2년 가까이한 뒤, SafeLift라고 부르는 제품을 하나 들고 드디어 공개가 되었다. 올해 초의 일이다. 근골격계 보호를 위한 소프트 엑소슈트인데, 등 근육의 사용을 30% 넘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놀랍기는 하지만, 사실 이 정도는 소프트 엑소슈트 논문 단에서도 익히 발표되었던 내용이다.
위 특허는 무려 1898년에 등록된 특허이다. 허리 보호 방식에 대한 것인데, 허리에 고무줄처럼 탄성체를 매달아서, 굽혔다가 펴는 동작을 보다 수월하게 (정확히는 펴는 동작을 수월하게) 도와준다. Verve Motion 의 SafeLift에서 주창하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씩 조금씩 좀 더 사용하기 편한 방향으로 개선시킨 것에 불과할 뿐이다. 여기서 또 "하버드를 나와도 창업은 어려운가보군"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다가 오늘, Verve Motion이 $ 15M 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다는 기사가 나온 것을 보고서야 "아 열심히 잘 하고 있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쳤더랬다. 투자 금액만으로 스타트업이 잘 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참 우스운 수준이지만, 어쨌거나 150억 원이 넘는 금액을 맡길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번 투자가 진행된 이유는, Ahold Delhaize 라고 하는 유럽과 미국의 마트 체인에 슈트를 납품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납품 방식은 웨어러블 기구들이 익히 행해왔던 전략으로, 바로 실전에서 쓰는 방식이 아니라 일부 점포 혹은 연구 단계 수준에서만 슈트를 사용하게 된다. 계약 내용에 따르면(WSJ 링크), 앞으로 수 달 내에 250대의 슈트를 보급한다는 것 같은데, 뭐한다고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부러워서 괜히 투덜대는 것은 아니고...
기사를 보자 마자 연구실 채팅방에 공유했는데, 부디 교수님이 자극을 받으시고 "아 우리 연구실도 빨리 창업해야겠다" 하는 마음을 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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