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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한눈에 보기/학계 트렌드

기계 비전공자가 기계를 만들면서 생기는 노하우

 연구를 하다보면 "이거 왜 이렇게 했어?"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말을 조리있게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때마다 진땀을 흘리며 "그렇게 한 이유는요..." 하고 운을 떼지만, 온전하게 내 의도를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종종 받는 웃음기 가득한 리액션이 충격을 받아(관련 글) 더욱 더 내 생각을 표현하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대학생-대학원생들이 하드웨어를 만드는 과정은 크게 모델링과 제작으로 나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3D 모델링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 기계를 조립하는 것이다. 제작 단계에서는 과거라면 수수깡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지만(다이슨의 경우, 관련 글), 현재는 3D 프린터가 알아서 해준다. 일반인들이 3D 프린터의 위력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실제 공정보다는 빠른 프로토타입 제작에 활발히 쓰이기 때문이다. 행여나 "3D 프린터는 한 때 엄청 각광받더니 요즘은 좀 잠잠하네!" 하고 생각했다면 기계 만드는 사람들이 무시할테니 주의하자!

 

모델링 프로그램 솔리드웍스


1. 공차의 존재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공차"라는 개념이다. 대만에서 건너온 밀크티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엔지니어들에게는 늘 발목을 붙잡는 존재이다. 3D 모델링은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경우를 산정한 채로 생성되는데, 실제 제작되는 부품들은 수치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을 공차라고 한다(공학적인 오차라는 뜻일까?). 

 

 3D 프린터는 매우 편리하긴 하지만, 제작하는데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린다. 작고 단순한 파트들은 (대충 한손에 들어오는 사이즈) 6시간 이내로 제작이 가능해서 당일에 모델-제작까지 가능하지만, 웬만한 사이즈는 다음 날 사용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좋다. 이 때, 공차를 잘못 생각하고 제작할 경우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기껏 제작한 부품이 사이즈가 맞지 않아 사용이 불가능해질 수 있고, 제작 타임라인은 하루씩 뒤로 밀리게 된다.

 

 하지만, 공차는 계산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사용하는 3D 프린터, 혹은 다른 제작 툴에 따라 공차의 크기도 다들 다르기 때문에 "이거 공차를 어느 정도 주고 모델링 해야 되나요?" 같은 질문을 경력자에게 먼저 해주는 것이 좋다. 이게 안된다면, 아래와 같은 방법을 사용해야 하지만 이 역시 기계 만드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곤 하는 방법이다.


2. 접착제의 사용

삶이 편안해지는 록타이트 시리즈

 "이거 접착제로 한거야?" 이건 오늘 들었던 말이다. 나는 보통 공차가 발생할 경우 접착제로 해결한다. 예를 들어 두 파트를 연결하는 부위가 꼭 들어맞지 않아 제대로 된 접합이 어려울 경우, 대충 접착제를 발라서 반영구적으로 붙여버리는 것이다. 

 

 이 때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면 "프라이머"를 꼭 사용하는 것이다. 한국말로는 경화제라고 하려나, 본드가 좀 더 빨리 굳도록 도와주는 촉매이다. 록타이트 제품군이 원체 빨리 붙는다 하여 순간접착제이지만, 이는 과대광고에 가깝다. 엄밀히 말하자면 "1분 접착제" 혹은 잘 봐줘야 "30초 접착제" 정도가 아닐까. 그 동안 참 다양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파트에 스며든다거나, 옆으로 퍼지는 등) 프라이머로 최대한 빨리 본드를 굳혀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기계 만드는 사람들은 접착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거 튼튼해봤자 얼마나 튼튼하다고" 하는 마음이다. 좀 더 정확한 모델링, 혹은 볼트와 너트의 제대로 된 활용을 통해 접착제의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오늘 들었던 말의 맥락도 그러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모델링에 정확도를 기울이는 것보다는 그냥 접착제로 해결하는 게 맘 편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정확도에 기울이더라도 이런 공차는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접착제의 장점을 십분 확인할 수 있는 날이었다. 다이니마라고 하는, 튼튼한 끈이 있다. 내가 주로 썼던 줄은, 한 줄에 45kg 정도의 중량을 견딜 수 있으니 정말 상당히 튼튼하다. 멋모르고 꽉 잡으면 손가락이 베이는 정도인 것이다. 

 

 문제는 이 끈을 묶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파트에 매듭을 고정시켜야 하는데, 끈이 원체 복원력이 강해서 매듭이 쉽게 풀리는 것이다. 여기에 나는 록타이트와 프라이머를 치덕치덕 발라서는 고정을 시켰더랬다. 그걸 본 동료가 "접착제 쓰지 말자" 라고 하며 볼트/너트 체결 방식과 외슬리브 등을 사용하며 고정을 시키려 한 것이다. 

 

 볼트/너트 체결과 외슬리브 사용은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방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고정되지 않았다. 결국 두 시간 정도를 삽질을 한 뒤에 다시 대충 매듭을 만든 후 록타이트를 치덕치덕 하는 방법으로 회귀했다. 무시당해 시무룩해져있던 록타이트 401과 프라이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와서는, 제 역할을 온전히 해주었다는 해피엔딩이다. 


 "기계적 결합에 빠져 화학적 결합을 무시해왔군!" 하며 동료도 깨우침을 받았지만, 사실 좀 더 모델링에 힘썼더라면 접착제를 쓰지 않고도 끈과 파트를 결합할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고상한 방법을 생각해내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확실하다. 앞으로 상당히 오래 남은 연구 기간 동안에 이런 저런 노하우를 계속 쌓아나가야 이런 저런 무시도 받지않고 당당하게 기계를 만들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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