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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한눈에 보기/학계 트렌드

웨어러블 연구실의 야외실험...피크닉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관련 글 참고)의 발표날이 다가옴에 따라, 시연 등 다양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신입생인 나로서는 딱히 맡은 일 없이 이런 저런 보조업무를 할 뿐이지만, 오늘은 야외 실험에 따라가서는 신나게 운동장을 뛰놀았다.


아 날씨 좋네

 실험에 필요한 이런 저런 수발을 드는 시간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수발을 잘 드는 것이 내 할 일이다. 100m를 7초에 뛰어야 하는 실험이기에 체력이 줄어드는 사람들에게 물을 가져다 주고, 이런 저런 실험장비들을 미리 들고 대기하는 등의 일들을 뜻한다. 

 

 허드렛일들이지만, 그런 사소한 일들을 잘 챙기다보면 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연구실 선배들과 하게 된다. 오늘 들었던 중요한 이야기 중에 하나는 "Metabolic Cost"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어로는 대사량이라고 할까? 어떤 일을 행할 때의 칼로리 소모량을 뜻한다.

하버드 Conor Walsh 연구실에서 개발한 웨어러블 슈트

 연구실이 웨어러블을 주제로 하다보니, 새로 개발한 웨어러블 제품이 칼로리 소모량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느냐가 자연스럽게 중요한 지표로 떠올랐다. 위 사진과 같이, 하버드에서 개발한 보행/주행 보조 슈트 역시 얼마나 대사량을 줄여줄 수 있는지를 자랑스럽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들었던 이야기는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대사량에 악영향을 주더라도, 주머니에서 초코바 하나 꺼내서 먹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얼마나 편하게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할 수 있는지이다. 예를 들어, 바로 위 사진은 허리춤에 5.7kg가량의 구동기를 매달고 다녀야한다. 아무리 걷고 달리는 것에 힘을 덜 들게 해준다고 하더라도, 허리 춤에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해주는 기기(쉽게 앉을 수도 없다)를 매달고 다닐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상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쳤는가로 대변되는 엔지니어의 역량은, 실생활에 쓰이는 기기를 개발함으로써 꽃피울수 있다. 웨어러블 연구의 방향이 대사량 검증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정신줄 꽉 붙들고 "나는 얼마나 편한지를 살피겠어"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연구로만 끝나는 기술을 개발하게 될 뿐일 것이다. 이런 내용을 연구인생 초반에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또 실험을 하다보니,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었다. "이런 운동장이 실험실 바로 옆에 있으면, 바로 바로 실험하기 참 좋을텐데" 그 때 마다 나는 대답했다. "사실 미국 나이키 본사에 가면 '궁극의 조깅코스'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요. 나중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네요." 

미국 오리건의 나이키 본사

 이 곳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역시 하루키 에세이 덕이다. 우연히 나이키를 견학가게 된 하루키가 '궁극의 조깅 코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뛰어보려고 했으나, 챙겨온 옷과 신발이 모두 뉴발란스라서 눈물을 머금고서 벌거벗고 조깅을 해야 했다는 슬픈 전설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나이키에서 친절하게도 옷과 신발을 제공해줬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연구실에서 아무리 새로운 기술을 생각해내더라도 나이키처럼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곳만큼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 같다. 역시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술자들도 정치인들도 아니라 기업가들이구나...! 하는 웅장한 생각을 했지만, 기술자들도 정치인들도 나름대로 세상을 바꾸어 가겠지요.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는, 내가 늘 "정말 머리가 좋은갑다" 하고 생각했던 선배 역시 "정말 머리가 좋은 것 같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말하자면 아이돌의 아이돌이랄까? 공학 지식들은 생각보다 상당히 발전해서, 실제 개발하는 대상에 적용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베르누이의 정리는 물체의 부력을 설명하는 아주 좋은 툴이지만, 종이비행기를 접을 때는 대충 기존의 방식대로 접을 뿐 날개를 이리 저리 변형시키며 베르누이를 실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돌의 아이돌은 그런 베르누이조차 자유자재로 연구 대상에 적용할 줄 알았던 사람이라고 했다. 나의 아이돌은 아이돌의 아이돌을 보며 "저 정도 되면 연구가 확실히 즐겁겠군"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나로서는 아이돌만 보더라도 감탄을 마지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모르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므로 자신감을 갖고 하자! 라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아이돌일테다(아닌가?) 나중에 나도 아이돌의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는 행동 하나 하나에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6시간 정도 걸린 야외실험이라, 목덜미가 발갛게 타버렸지만 "와 피크닉 같다!" 하는 생각으로 즐겁기만 하였다. 가끔씩 이런 날이 있는 것도 상당히 좋을 것 같다. 싫어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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