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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한눈에 보기/산업 트렌드

274만 구독자 유튜버가 개발한 머리깎기 로봇 - Stuff Made Here

 오전을 연구실에서 보내다가 "이러다 또 주중에 현타오겠다" 싶어 오후에는 짐싸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놀아본 놈이나 놀 줄 아는 거지, 막상 나와보니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래, 머리를 깎자. 시간이 남으니 머리를 깎는다. 상당히 건설적인 생각이다.


 여름이라 머리를 좀 짧게 깎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짧게 깎아주실 수 있나요?" 하고 미용사에게 요청한 후, 어떻게 깎는지 조마조마 하며 20여 분 간 앉아있었다. 미용사는 처음에 난처해하며 "너무 뜨는 머리라서, 최대한 안 뜨는 선에서 짧게 해드릴게요" 라고는 했지만, 이내 감을 잡은 듯 쉴 새 없이 머리를 조각해나갔다. '조각해나갔다' 라는 것이 머리를 깎는 미용사를 보는 내 솔직한 심경이다. 머리를 깎는 게 이렇게 복잡하구나!

 

 하지만 정말 이렇게 복잡할까? 클루지라는 책(관련 글)에서 소개하듯, 인류의 신체 구조를 포함한 모든 것들에는 비효율이 섞여있기 마련이다. 알고리즘이 local optima에서 벗어나기 힘들듯이, 한 번 형성된 생각회로의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 깎기를 현대 기술로 단순화한 작업이 없는지 검색해보았다.

 

직접 만든 미용 로봇으로 머리를 깎는 유튜버 Stuff Made Here

 아쉽게도 머리 깎기 방법을 최적화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는 진행된 적이 없는 것 같았지만, 놀랍게도 머리깎기 로봇을 만든 유튜버가 있었다. 사실 최적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그렇게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가위라는 흉기를 로봇에게 맡긴 채 자신의 머리를 들이밀 줄 아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떻게 이런 로봇을 설계했는지 살펴보니, 이건 또 이것 나름대로 최적화의 다른 범주에서 굉장히 의미있는 활동이었다.

 

360도 회전하며 머리를 깎는 방식

 우선 로봇은 주어진 틀을 360도 돌아가며 머리를 깎는다. 가위는 머리 곡면과 평행하게 위치하여 안전을 도모했고 가위의 위치는 여러 개의 서보 모터를 활용한 로봇 팔로 움직인다. 이러면 이제 프로토타입의 완성이다. 잔디인형 같은 수준은 깎아낼 수 있겠지. 하지만 인간의 머리를 자를 때는 세부 질문들이 뒤따른다. 인간 머리의 곡면을 어떻게 파악하지?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서는 팽팽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그건 또 어떻게 구현하지? 


1. 머리 위치 파악

머리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 1) Depth 카메라 2) 레버 스위치

 

 머리 위치 파악을 간단히 생각해보면 "카메라를 달면 되지!" 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로봇 역시 처음에는 Depth 카메라(거리를 파악할 수 있는 카메라)를 활용했더랬다. 하지만 360도 회전하는 로봇은 카메라를 지속적으로 가려줬고, 만족할 만한 위치추정은 불가능했다. 결국 레버 스위치를 하나 달고, 해당 스위치가 눌리면 "머리에 닿았다!"를 로봇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게끔 했다.

 

머리 깎는 위치를 나타낸 지도

 다시 말하자면, 눈이 없이 머리를 깎는다는 것이다! 가당키나 한 것일까? 이 로봇은 머리를 자른 위치를 나름의 지도에 표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이 이슈는 로봇 제어에서는 굉장히 중요한데, 이처럼 실시간 위치 추정이 어려워 사전에 제작된 모델을 바탕을 사용할 경우 오차가 누적되며 결국에는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를 위해 칼만 필터(위키피디아)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솔루션이 존재하지만 이론에 비해 실생활에서는 써먹기 힘들다.

 

 굉장히 중요한 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가 펼쳐질 때 고개를 절레 절레 저으며 말하면 된다. "칼만 필터는 이론에 비해 실제 성능이 좀 떨어지지." 다들 '뭘 좀 아는가보군' 하고 고개를 끄덕일 테다. 


2. 머리 고정 

진공청소기를 활용한 머리 고정

 로봇의 초기 모델에서는 실제 미용사들처럼 빗을 이용해 머리를 고정하고 가위로 잘라냈지만, 빗만으로는 머리카락에 충분한 장력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진공청소기였다. 머리를 빨아들이면서 가위로 중간부분을 쳐내는 것이다. 진공청소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귀 옆에서 계속 들리고 있다고 하면 5분 쯤 지났을 때 팔꿈치로 로봇의 관절을 굉장히 세게 가격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어디까지나 상용 로봇이 아닌 콘텐츠용임을 명심하도록 하자.


3. 결과물

공포에 질린 개발자의 모습

 클루지의 집합체가 아닐 수가 없지만, 이 정도로 쌓인 클루지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결과물도 꽤 준수하게 나왔다. 어쨌거나 개발자가 다치지 않았고, 머리카락을 일정한 길이로 잘라내는 것에 성공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훌륭하다.

 

귀 옆과 뒷머리를 건들지 못한 로봇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면, 귀 옆(너무 위험하다)과 뒷머리(로봇이 닿기 힘들다)를 제대로 자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디테일한 마무리는 사람이 잘라줘야 했는데 이러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처음부터 스스로 깎고 말지. 그래도 어쨌든 이 로봇은 상용화를 위한 게 아니라 콘텐츠용임을 명심하고 박수쳐주도록 하자.


4. 개선된 모습

로봇 팔 구조, 트리머, 진공관 호스를 개선한 모습

 이후 이 유튜버는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머리를 깎는 콘텐츠를 통해 기부금을 조달하는 행사를 펼친 적이 있다.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로봇을 개선시켜야 했으므로 다양한 노하우들이 공개되었는데, 이는 다시 한 번 다른 글을 통해 정리할 필요가 있을 만큼 중요한 내용이라고 여겨진다. 

 

 어쨌든 실제로 개선된 내용은, 로봇이 360도 회전하는 것은 맞지만 프레임 위에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팔이 움직이도록 변경했으며, 가위를 사용하지 않고 트리머를 사용해서 더 안전하고 빠르게 머리를 자르도록 했고, 잦은 고장을 일으켰던 진공 호스를 Rigid한 프레임으로 변경한 것이다. 

 

기부 행사 머리 깎이 쇼를 진행하는 유튜버

 

 결과는 사실 그렇게 크게 개선되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제품을 실험한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제어 안정성과 더한 수준의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보다 세 단계 정도 더 중요한 것은 운인데, 특히나 프로토타입 단계의 제품은 운이 30% 정도는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 감정을 이입해서 해당 영상을 본다면, 한층 더 손에 땀을 쥐면서 볼 수 있을 테다.


 "머리를 깎는 최적 해"를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지만, 웬 유튜브의 썸네일에 휘몰아치듯이 빨려들어가서는 결국 유튜브 리뷰로 끝나고 말았다. 역시 아직까지는 현대 기술을 통해 최적 해를 찾는 것보다 인력을 통해 최선 해를 찾는 것이 비용이 싸게 먹힌다. 하지만 이런 구조가 개선되기까지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 걸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술 발전의 과도기에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발전 과정을 꾸준히 관심 갖고 지켜봐 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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