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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관정도서관 서재

[도서 리뷰] "이 글이 재밌으면, 블로그 구독해봐야지" - 개리 마커스, 클루지

지능의 사생활 편에 이은 진화심리학 도서 리뷰이다.

어렸을 때는 마냥 꿈만 같은 이론들인

"시크릿"이라든지 "꿈꾸는 다락방" 등을 읽고 가슴 뛰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왜 이렇게 냉철한 종류만 읽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차가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실증될 수 있다는 점이

진화심리학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고도 근시 + 난시의 개리 마커스,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

저자인 개리 마커스는 만 23살 무렵에 MIT에서 심리학 전공으로 박사를 받았다.

아무리 계산해도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박사를 취득했는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대학을 15살 쯤 들어갔을까? 대학 전공도 인지과학이라는 분야를 

스스로 설계해서 졸업했다고 하니, 뭐 보통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AI를 이용해서 지도를 만드는 회사를 차려서

2년만에 우버에 매각했다고 한다. 

하여튼 "지능"에 관련된 것은 인간 지능이든 인공지능이든 전문가인 셈이다.

 

현재 뉴욕대학에서 심리학과 교수이자 언어학습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고 하여

상당히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 역시 그런 맥락에서 작성되었다. 

단순히 지난 번 책인 "지능의 사생활"처럼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왜 이런 심리적 기제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엉망진창이며 통제하기 쉬운가-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보자.

다음의 단어 목록을 여러 번 읽어보고 (외울 수 있으면 좋다) 숙지해놓자.

 

가구, 자만하는, 구석, 무모한, 의자, 탁자, 무관심한, 텔레비전

 

 

그럼 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한 단어로 표현해보자. 

 

도널드는 이른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그는 이미 매킨리 산을 등정했으며 카누를 타고 콜로라도 강의 급류를 타고 내려간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자동차 파괴경기에도 출전했으며 보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트엔진이 달린 보트를 운전하기도 했다. 그는 몇 번이나 부상과 심지어 죽음의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새로운 자극을 찾고 있으며 스카이다이빙, 혹은 돛단배를 이용한 대서양 횡단을 계획 중이다.

 

해당 단어에 대해 생각했는가? 그렇다면 그 단어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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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책에서는 단어 목록이

"가구, 자만하는, 구석, 모험적인, 의자, 탁자, 독립적인, 텔레비전" 이었고,

나는 한 단어로 "모험적인"을 떠올렸다.

앞서 주어진 단어 목록은 인물 설명을 읽는 동시에 잊어버린 상태였는데,

무의식 중에 저장 되어 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떤 상황에 대한 판단은 주변 맥락에 따라서

순식간에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바뀔 수 있다. 

 

클루지라 함은, 공학적으로는 "영리한"을 뜻한다. 

NASA의 아폴로 13호 프로젝트에서,

CO2 여과기가 잘 작동하지 않는 응급상황이 있었는데

(사실 아폴로 13호는 전반적으로 엉망진창이었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프로젝트었다)

이를 양말과 절연 테이프, 박스 등으로 급조해서 해결했다고 한다.

급조한 이산화탄소 여과기

맥락없이 보자면, "와 저렇게 급박한 상황에서도 머리를 잘썼다" 하고

감탄하면 되겠건만 어디까지나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에

애초에 급박한 상황이 나오면 안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이산화탄소 여과기를 급조해야 했던 이유가

우주선에 탑재된 제품이 서로 호환되지 않는 부품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니

절연 테이프로 박스를 칭칭 감으면서 비행사가 얼마나 현타를 받았을까 예상도 가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책에서 "클루지"라 함은 누더기로 급조된 판단력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애덤 스미스가 그린 합리적인 인간상은 온데간데 없이, 판단력이 누더기로 치부되는 이유는

인간의 기억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사건에 번호를 부여해서 바로바로 찾아볼 수 있는 

"우편번호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인간은 "맥락 기억"이라고 해서, 해당 순간이 다른 기억과 얼마나 유사한지와 같은

아주 쓸모없는 방식으로 작동을 한다.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직관" 같은 기능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클루지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런 오류가 인공지능에서도 많이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Nature Machine Intelligence는 인공지능의 오류를 가리켜서

"Shortcut"을 쓰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해석하자면, 제대로 대상을 확인하지 않고 결론을 내려버린다는 것이다.

Nature에서 보여준 인공지능 오류의 예시

초원 사진만 보고 "양들이 뛰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AI가 있는가 하면

X-Ray 검사에서 사진은 보지도 않고 병원 이름만 보면서 진단을 내리는 AI가 존재하기도 한다.

인간의 판단 실수, 즉 클루지와 너무나도 흡사한 것이다.

 

인공지능에서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왜 그런 판단을 내리게 했는지를 파헤치면 된다.

Heatmap. 인공지능이 주로 확인한 부분을 보여준다.

위 사진을 개로 분류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이 주로 살펴본 부분을 표시하면

저렇게 표시가 되는데, 판단의 근거로서 제시하기에 아주 훌륭하다.

인간의 판단도 동일하게 해결하면 될 것이다.

내가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그 원인을 잘 정리해보고 

오류를 발견한 수 있다면 클루지를 만들어낼 여지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클루지를 이겨내는 13가지 습관"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목표를 추상적으로 잡지 말고, X이면 Y이다, ~하면 ~하겠다 같이

명확한 조건문으로 제시하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연말까지 살을 3kg 빼겠다" 보다는 

"감자튀김을 보면 손도 대지 않겠다" 처럼

머릿속에 이미지를 바로 떠올릴 수 있도록 목표를 잡는 것이 성공확률이 높다고 한다.

클루지를 역활용하는 멋진 방법이 아닐 수가 없다.

A4 용지 같은 것에다가 조건식의 목표를 크게 써붙이고는 방에다 붙여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