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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뇌 속 풍경

대학원생이 자가격리하기 전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코로나에 걸렸다. 그동안 그렇게 피해다녔던 것이 무색하게, 제주도에서 돌아오자마자 걸렸다. 사실 제주도에서 걸리는 것보다야 100배는 낫지만, 이제 와서 걸렸다는 것이 억울한 것은 마찬가지다. 피할만큼 피했던 거 같은데...

 

 여튼, 내 생에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하고 일주일간 보내는 시간이 또 있을까 싶다. 쉬는 것도 아니고, 안 쉬는 것도 아니고. "난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쉬었는데" 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지만, 내게 집은 쉬는 공간이 아니다. 물론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지만, 난 쉬는 시간이라면 한강에 가서 물멍을 때리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내 성격에도 맞지 않는다. 

 

 그래서 자가격리를 한 지도 어느새 7일차, 마지막 날이다. 지금껏 기숙사 자가격리 공간에서 있었지만 오늘 24시가 되면 곧바로 내 기숙사 공간으로 가야지 마음먹었다. 1인실에 지내는 것이 결코 불편하지 않았고, 내 2인실 기숙사가 나은 점은 거의 아무 것도 없겠지만 너무 오래 있었다. 편하고 자시고 내 공간으로 가고 싶다. 

 

 그래서 정리해 본 나의 자가격리 7일, 뭘 했고 뭘 했더라면 좋았을까?


1. 정주행 목록: 잭 리처, 더 보이즈, 해리포터 7편, 미스터 선샤인

 아마존 프라임비디오는 회원가입 시 일주일 무료기간을 준다. 기가 막힌 기간이다. 가입을 하자마자 결제 취소를 하고 일주일간 감상하면 된다. 나는 잭 리처와 더 보이즈 시즌 1&2를 봤다. 잭 리처는 내가 갈망하는 덩치가 주인공이어서 참 재밌게도 봤다. 더 보이즈는 히어로물인데 그냥 히어로물은 아니고 다크히어로물이다. 플롯이 기똥차게 흡입력 있어서 재밌게 봤다만 시즌 2 중반까지였고, 꾸역꾸역보다가 시즌 3는 더 이상은 지쳐서 보지 못했다. 

 

2. 음식 목록: 찜닭 1회, 피자 2회, 햄버거 1회, 편의점 마제소바 + 감동란 3입, 뼈다귀탕, 편의점 도시락, 떡볶이 등등

 기숙사 격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편의점 음식을 먹을 수 있던 게 행운이었다. 배달 음식만 먹었다면 질리고 건강에도 나빴을 것을 건강한 편의점 음식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손 부들부들 떨며 사먹었을 감동란 3입 (2700원)이나 GS 마제소바 (3500원) 같은 음식들도 "한끼 식사지" 하면서 사먹었다. 그래도 이제는 그냥 학식 먹고 싶다. 격리되기 전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

리뷰이벤트용 사진

3. 들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들

 손톱깎이가 절실하고, 세제는 바디 워시로 대체했다. 면도기도 있었으면 한 번쯤 잘 썼겠지만, 이만큼 길러보는 것도 오랜만이라 나쁘진 않다. 컵이 있었더라면 요긴하게 썼겠지만, 없어서 많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책 한 권을 무겁게 들고와서는 말 그대로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4. 했더라면 좋았을 일들

 논문 몇 편 읽고, 연구실 업무를 조금 처리했지만, 기본적으로 대학원생은 백수와도 같다. 남아 있는 시간을 자신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이다. 나는 여러 미디어를 보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지만, 다른 취미거리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테다. 게임이라든가 음악 같은 것을 이번 기회에 배웠다면 자가격리 이후의 시간들이 좀 더 알찼을까? 지난 7일을 후회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함께 코로나에 걸렸던 제주 여행 동기들과는 증상이 전부 제각각이었다. 많이 아픈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는 하루 정도 열과 몸살이 날 뿐, 이후에는 몸살보다는 너무 오래 누워있는 것으로 인한 요통이 더 심할 정도로 금방 나았다. 그 대가로 7일의 휴식을 얻은 것은 정말 과분할 정도로 길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건강관리를 잘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