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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관정도서관 서재

[도서 리뷰] 아사다 지로, "칼에 지다"

침착맨의 영상 중에 "칼에 지다"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왠지 모르게 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그러고보니 작가였네)

재밌게 본 책이라고 홍보하는 모습에 끌려서 

나 역시 빌려 보게 되었다. 


<스포 없는 소개>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가 막힌 소설이었다.

이렇게 재밌게 읽어본 소설은 실로 오랜만이었다고 생각된다.

침착맨은 "신선조 이야기"라고 했지만

정식 일본 명칭은 '신센구미'라고 하는 것 같다.

 

신센구미에 대한 배경은 나무위키를 참고하든가 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책을 읽으면서도 당시 일본의 상황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재밌다고 생각되었다. 

"아하, 이런 이야기군!" 하는 맛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등장 인물들도 상당히 입체적이다.

"사무라이" 하면 생각하는 이미지는 당연히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런 편견들을 없애주는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물론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일본 콘텐츠가 으레 그렇듯이

읽는 이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표현 기법이 자주 등장한다.

순간에 대한 묘사를 아주 감정적으로, 대사와 상황들을 굉장히 잘 활용해서 표현하는데

도대체가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다.

 

중반까지야 눈가에 맺히는 '뜨거운 눈물' 선에서 정리했다만

후반부는 그냥 꺼이꺼이 울면서 봤다.

잠시 감정에 취해있다가 잠시 뒤에 생각해보니

도대체가 말도 안되는 장면들이 많은 것이다.

"이 책은 꼭 집에 사 놔야겠다" 생각했다가

"그냥 빌려서 읽어도 나쁘진 않겠다"로 생각을 바꾼 주된 이유이다.


<스포 포함 소개>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국사책에서 간략하게 접했던 것처럼

간단히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는 계기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흥선대원군처럼 쇄국정책을 펼치려고 하는 세력이 분명 존재했고

그 뜻에 동참한 사무라이들이 "신센구미"였다.

신센구미는 나라의 문을 열자고 주장하는 메이지유신 측 세력과

맹렬한 전투를 펼쳤고, 책의 내용은 그 과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결국 메이지유신이 성공했다는 것은 신센구미가 그 전투에서 졌다는 것이다.

반역으로 몰린 신센구미는 그 역사까지 부정당하는 처지에 놓였지만

몇 십년이 흐른 뒤(1910년 대), 신센구미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기록을 토대로

1990년대와 2000년 대 초에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신센구미 활동을 기록한 첫 책

이 소설은 처음으로 신센구미의 일지를 기록하기 시작한 사람의 시선에서

신센구미 대원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하자면 서간체 소설과 유사한 형식인지라

인터뷰 대상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나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웬 미친놈이 각 장마다 인터뷰 대상의 이름을 써 둔 탓에 강제 스포를 당했다.

나중에 책 소개글을 쓰게 된다면

꼭 스포 포함 버전과 미포함 버전을 구분해야겠다-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되었다.

 

책의 주인공들은 거의 모두 실존 인물로,

핵심 인물인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도시조, 사이토 하지메 등은

"바람의 검심"을 비롯한 사무라이 만화에 꼭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요시무라 간이치로" 역시 실존 인물이긴 한데,

책에서 묘사하는 것만큼 엄청난 역사를 실제로 가지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신센구미 일지에는 딱 두 문장으로 등장하는 사람인데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 생존 복귀했으나 할복 명령을 받은 사람",

그리고 "사쓰마 번으로 편입이 발표되었을 때

'그게 정말입니까' 하고 큰 소리로 되물은 후에 꺼이꺼이 울던 사람"

이라는 것이 전부이다.

 

그 두 문장을 보고는 작가인 아사다 지로가 

"왜 목놓아 울 수 밖에 없었을까?"

"기껏 살아 돌아왔는데 할복 명령을 받았을까?" 하는 질문을 끝없이 던진 결과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아버지 세대부터

자식 세대까지 아우르는 소설로 바꾸어낸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실제 역사와 잘 짜맞추어 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책을 읽고서는 한국의 역사와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외세에 맞서는 세력과 외세를 받아들이는 세력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결과적으로는 외세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것들을 훌륭하게 지켜낸 반면

조선은 외세를 거부하려는 세력만 있었다가(흥선대원군)

강하게 치고들어오는 옆 나라 때문에, 고유 문화가 거의 씨가 말라버렸다.

 

하지만 한국 고유의 문화가 사라진 것이 온전히 일본 때문인 것이 아니라

외세를 받아들이자는 사람들과 배척하자는 사람들이

서로를 무시하고 적대시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우나 고우나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가야하는 섬나라 일본과는 달리

기회주의자로 가득찬 역사를 가진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이제 와서 "우리것을 사랑하자"라고 주장하려니

우리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다.

 

한민족으로서는 어떤 자세로 역사를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