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제레미 린이 뛰고 있는 뉴 타이페이 킹즈의 유니폼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침에 엄마와 함께 나들이 겸, 구장이 있는 Xinzhuang 역으로 대모험을 떠나게 되었다. 그 길에 두리안을 파는 가게를 발견하고는 “뚜오샤오치엔” (얼마예요?) 를 말했더니 가게 사장님이 바로 포장을 해주셨다. 아직 “좀 이따가 다시 와서 구매하겠습니다”를 말할 중국어 실력은 되지 않았기에 그대로 받아들고 돈을 치렀다 (NT 280 이니 한국 돈 만 원 쯤 했을 테다). 두 시간 남짓 걸렸던 아침 대모험을 애착 두리안과 함께 했더니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가방에서 터지는 바람에 두리안 향이 가득했다.
정작 구장은 문을 열지 않아 운동하며 지나가는 아저씨 두 명을 붙잡고, chatGPT와 구글 번역기를 번갈아 사용하며 “나 유니폼 사고싶어요”를 어필했다. 친절했던 아저씨들은 경비원을 찾아가 가게 오픈 시간이 다섯 시임을 알려줬고 난 못내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결국 호텔로 돌아왔다. 오래지 않아 체크아웃을 하고 다음 호텔인 Taipei Garden Hotel로 이동했다. 첫 이틀을 머무른 Caesar Metro에 비해 지하철 역 접근성도 떨어지고 수영장도 없지만, 가격은 더 비싼, 지금 생각해보면 “왜?” 싶은 호텔이다. 안 좋았던 것은 아니고, 시내 뷰도 좋고 시설도 정말 깔끔하고 좋았다. 단지 Caesar Metro에서 수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터라, 다음에 다시 대만에 온다면 그냥 Caesar Metro를 선택할 테다.
오후 일정도 단출하게 잡는다고 했건만, 아버지의 체력 이슈는 여전했다. 중정기념관을 보고 타이베이 101 근처 카페로 가는 계획 뿐이었는데도 일정을 조기 종료했다. 그래도 중정기념관은 웅장했다. 30년 가까이 대만을 통치하고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준 장계석 총통을 기념하는 곳인데, 내가 지금껏 본 어떤 건축물보다도 웅장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실상 독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찬양받을 수가 있나 싶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싶어 나무위키를 뒤져보니 더욱 가관이었다. 긴 생애를 요약하자면 정치 활동 초반에는 소련에 붙었다가, 세력을 잡은 뒤로는 미국 힘을 빌려 정적들을 제거해 나갔던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해줄 일인가 싶었다. 몰아냈던 정적들은 죄다 중국 본토에 있고, 대만에 있는 사람들은 온통 자기 식구들이라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후 대구 경북 세력들만 모아서 나라를 독립했으면 이런 평가를 받았겠지, 싶다.
오늘 아버지 체력의 막타를 친 것은 다름아닌 음식이었다. 중정기념관을 마치고 나왔더니 대부분의 식당이 Break Time 이었던 지라 (오후 두 시부터 식당 운영을 중지하는 곳이 많으니 주의!) 급한대로 문이 열려있던 대학가 근처 식당으로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맛은 없고 밥은 많아 곤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남는 음식을 내 위장에 털어넣고 나니 나조차도 컨디션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타이베이 101으로 입가심을 하러 가자고 아빠를 어르고 달래 이동했지만, 카페들에 사람이 워낙 많아 입장하기 힘들었다. 일정을 짜면 짜는대로, 안 짜면 안짜는 대로 문제가 발생하는구나. 그래 이래야 여행이지.
자리가 있던 카페로 몸뚱이를 우겨넣고 목을 축이다가 또 다시 형과 엄마 아빠를 호텔로 돌려 보낸 후 제우의 대모험이 시작되었다. 우연히 포켓몬 센터가 백화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혼자 남게 되자 마자 헐레벌떡 방문했다. 마찬가지로 광광을 온듯한 외국인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전설의 포켓몬과 사진도 찍었더랬다. 눈이 돌아간 채로 기념품을 담다 보니 5만원 가까이 사게 되었지만 후회는 없다. 아쉬움만 있을 뿐. 어린이용 양말 중에서 제일 큰 걸로 구매한 거북왕 발목양말을 신고 귀국행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포켓몬으로 장식된 스쿠트 항공 비행기를 타고 있으면서도 포켓몬은 날 설레게 한다.
포켓몬 센터 이후에는 다시 유니폼을 사러 한시간 반을 걸려 뉴 타이페이 킹즈 구장으로 이동했지만, 웬걸, 경기 티켓이 있어야 입장이 가능했다. 사실 백화점 안에서도 구매가 가능한 곳이 있긴 했지만, 내가 원한 것은 티셔츠 형태였기에 “그래도 구장으로 가보자” 가 된 것이었다. 터덜터덜 돌아와 시먼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으나, 체력이 고갈된 아버지는 한식을 주장하셨다. 그렇게 들어간 한식당은 한국인이 전혀 없이 오로지 현지인들로만 가득한, 진정 현지인 맛집이었다. 맛도 나름 괜찮았다. 시킬 때까지만 해도 “여행 3일차 만에 한식이라니” 같은 생각이었지만 닭갈비를 엄마와 뚝딱 나눠먹을 때는 정신 없이 먹었다. 그래도 야시장 음식 좀 먹어보겠다고 양조절을 하여 결국 찹쌀 핫도그를 한 번 더 사먹었지만, 딱 그정도 가격의 맛이었다. 닭갈비나 더 먹을걸.
'사생활 들여다보기 > 뇌 속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의 대만 여행기] “갑자기 분노를 싸지르다” 5/5 (0) | 2024.06.19 |
---|---|
[6월의 대만 여행기] “진작 딘타이펑 올걸” 4/5 (0) | 2024.06.19 |
[6월의 대만 여행기] "거봐 혼자 다니면 심심하잖아" 2/5 (0) | 2024.06.19 |
[6월의 대만 여행기] "가족여행에서 다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사실 편견 아닐까?" 1/5 (1) | 2024.06.19 |
초보자용 철인3종에서 한강물 건너다 죽을 뻔한 사연 (한강 쉬엄쉬엄축제) (1) | 2024.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