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서 하는 쉬엄쉬엄 축제에 다녀왔다. 이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지는 어쨌거나 철인3종 종목들을 그대로 하되 시간 제한 없이 거리는 좀 더 짧게 해서 체험 가능하며, 대회보다는 축제에 좀 더 적합한 행사라고 보면 된다. 수영 300m, 자전거 10km, 달리기 5km로 구성된 꼬꼬마 철인3종이다. 줄여서 꼬마3종
쉬엄쉬엄이라는 이름답게, 여느 대회처럼 기록을 위해 사람들이 급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순서에 따라 움직이고 줄을 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제대로 재진 않았지만, 종목 별로 대기하는 시간이 꽤 됐던 것 같다. 근데 진행요원을 어떤 분들로 섭외한 건지, 뙤약볕에 안내를 하는 와중에도 "사진 찍어 드릴까요~^^", "2열로 서주세요~^^" 웃으며 응대하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만 종목별로 시작 지점이 모두 다르고 꽤나 넓기 때문에 위치가 헷갈렸는데, 지도가 없어 초반에는 조금 헤맸다. 물품보관소와 각 종목 시작위치도 모두 떨어져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종목별 시작 위치에 짐들을 모두 두고 갔다오는 것을 선택했다.
나로서는 수영-달리기-자전거 순으로 움직일까 했었다. 자전거가 제일 쉽기 때문에 지친 몸을 좀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철인3종의 기본 순서가 수영-자전거-달리기였기 때문에 맘을 바꿔먹었다. 그리고 수영이 끝난 이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영을 하고 나면 달리기는 커녕 정신 차리기도 힘들었다. 작년에 아쿠아슬론을 나가려고 준비했던 적이 있었는데, 사고가 생기면서 일정이 바뀌었고 결국 포기했더랬다. 그 때 이후로, '아 한강 수영 좀 해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고 이번에도 그런 마음으로 참가한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수영장 수영과 오픈 수영은 전혀 달랐다.
쉬엄쉬엄 축제 수영의 초급자 버전은 300m였는데, 삼각형 모양의 코스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한 바퀴당 100m라는 것인데, 막상 가서 보니 75m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나와 친구는 "에이 저건 너무 짧다" 라느니, "코스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해서 좀 널널하게 놀다가 들어오고 싶다" 이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더랬다. 그러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구조되는 사람들을 보며 "왜 포기하지? 그냥 일단 신청하고 본건가? 생각보다 힘든데" 같은 이야기도 했었다.
그렇게 내 순서가 되어 물 앞에 섰을 때, 수경을 닦기 위해 물을 잠깐 적셨다. 어라? 조금 차갑네... 자 입수! 풍덩! 어라? 하나도 안 보이네... 거기부터 이제 혼돈의 시작이었다. 자유영으로 시작해서는 삼각형의 첫 모서리를 돌고 있는데 벌써부터 보트를 붙잡고 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스트로크 하는 팔로 매달려있는 사람 뒤통수를 치고는 "헉 죄송합니다"를 외쳤던 것 같다. 그런데 더 나를 옥죄어 왔던 것은 첫 번째 모서리의 끝부분이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아니 이거 1/3도 안왔는데 언제 끝나지, 를 생각할 때쯤 안전요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너무 멀리 가시면 안 돼요! 나는 과연 어디쯤까지 가고 있던 것일까, 도수 없는 수경으로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황급히 방향전환하여 두 번째 모서리를 돌고 있을 때 (보이지 않기에 짐작할 뿐이다) 이미 숨이 차고 있었다. 평영으로 영법을 전환하여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강 바닥은 황토빛이었고, 중간중간 바위 비슷한 형체가 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도대체 이 밑에는 뭐가 있는 것일까? 좀 더 가다보니 마찬가지로 평영으로 가는 다른 참가자가 보였고, 그 꽁무니를 쫓게 되었다.
물이 계속 흘러가기 때문에 첫 번째 모서리에서는 멀어지는 방향으로 경로 이탈이 되었고, 세 번째 모서리에서는 자칫하면 코스 밖으로 나가겠다 하는 생각이 들만큼 자꾸 줄에 걸리도록 코스에서 벗어났다. 영법은 이제 포기하여, 말이 평영이지 개헤엄에 가까울만큼 스트로크가 작아졌다. 순간순간 숨쉬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바퀴를 돌고 나와 친구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아니 이 형이 나보다 먼저 돌고 나갔나 싶을 때 쯤 발견하여 마주친 친구의 모습은 패닉 그 자체였다.
"중간에 포기하려던 거 겨우 참았어" 서로 짧은 코스에 아쉬워하며 여유를 부렸던 지난 날을 뒤로 하고 트라우마로 남은 300m 코스를 복기해봤다. 과연 작년에 아쿠아슬론을 했더라면 1.5km를 완주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중간에 리타이어하고 참가비 9만원은 공중분해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에 750m를 신청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당시에도 나는 "너무 짧아서 아쉽지 않냐" 하는 소리를 지껄였더랬다. 그 친구는 변경된 일정에도 참가하여 완주를 했던 녀석인데, 새삼 대단하다.
그렇게 수영을 하고 나오니, 자전거로 쉴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었다. 자전거 10km와 달리기 5km는 상대적으로 쉬운 코스였다. 반환점마다 물이 있었고, 느긋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가장 짧았던, 300m가 채 되지 않아 보였던 한강 수영이었지만, 어쨌든 좋은 행사였다. 티셔츠와 메달을 선물로 받았는데 참가비 2만원이 무색할만큼 좋은 퀄리티였다. 나로서는 늘 뭔가 만드려고 하는 오세훈 시장이 부담스러웠던 적이 많았더랬다. 근데 이런 경험?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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