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미가 처음으로 "대륙의 실수"라는 타이틀로
유명해졌던 계기는 보조배터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파나소닉 18650 전지 몇 개에 플라스틱 케이스,
5핀 단자가 전부인 자그마한 기기가
실수까지 해가면서 좋은 품질을 만들어낼 법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잘 작동하지 않기가 어려운 제품인 것이다.
그럼에도 "대륙의 실수"라는 타이틀은
샤오미의 품질에 대해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여주었고
브랜드 가치 역시 현격하게 높아지게 되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샤오미의 회장 레이쥔이
한 시상식에서 다른 대표에게 시비를 건다
"5년 뒤에 당신네 회사보다 더 많이 번다는 데 10억 위안 건다"
갑작스런 시비에도 굴하지 않은 상대 대표는
"샤오미처럼 근본없는 기업한테 우리 회사가 질 리 없다"며
승부를 받아들인다.
자신있게 샤오미의 제안을 받아들인 기업은
중국의 거리전기(格力電器)였고, 에어컨 사업을 하는 회사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에어컨 사업하는 회사가
모바일 세계를 장악하려고 하는 기업을 상대할 수 있을까 싶어서
거리전기의 역사와 그 회장 둥밍주의 연혁을 찾아보았다.
Wikipedia에 나오는 둥밍주는 거의 무협지 수준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영업 사원으로 막 회사 재편을 끝낸 거리전기에 입사해서는
혼자서 회사 매출 12%를 끌어오는가 하면
10년만에 사장자리에 오른 뒤 회장까지 단숨에 치고 오른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나, 싶어서
거리전기의 에어컨 특성을 찾아보는데 마땅치가 않았다.
오히려 아마존에 등록된 리뷰는 험악하기 짝이 없다.
가격도 한 대에 200만 원 정도로 싼 편이 아닌데
어떻게 세계 최대의 에어컨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원인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칫솔을 팔아도 중국 인구가 17억 명이니
1원씩만 남겨먹어도 17억 원이구나"
그런 식으로 성장한 것이었다.
보통은 "중국인 17억 명이 너의 칫솔을 살 이유가 무엇이냐" 하고
꾸지람 듣기 마련인데,
중국의 특수한 사정이 곁들어져 있다.
1990년대 정도에는 전 세계가
가전제품이 상당히 발전한 상태였던 것과 달리
중국은 개발도상국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제 막 에어컨을 집에 들여놓으려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수요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거리전기의 가장 큰 지분을 가진 곳은
본사가 위치한 주하이(Zhuhai) 시 정부였다.
시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덕분에 주하이 시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킨 것은 물론이거니와
생산 설비를 완비한 덕에 중국 전역에 공급할 능력을 갖춘 거리전기가
덩달아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뭐 별다를 것도 없이 거리전기는
세계 최대 에어컨 생산회사가 되었고
둥밍주 회장은 1%가 안되는 지분(0.73%)을 가지고도
아시아 여성 부호 3위에 이름을 올린다.
2013년에 벌어진 샤오미-거리전기 내기의 결말은
2019년 샤오미의 매출이 1800억 위안(30조 원)
거리전기 매출이 2000억 위안(34조 원)으로 발표되면서
샤오미의 패배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2010년에 설립되어 10년이 채 되지 않은 샤오미가
30년이 넘은 하드웨어 회사(거리전기)의 매출을
10% 내로 따라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행보를 충분히 점쳐볼 수 있을 것 같다.
거리전자 역시 사업다각화를 위해
반도체 등 설비에 새롭게 진출하고 있고
둥밍주 회장 역시 각종 사업을 벌일 때 마다
주주들에게 호통을 치면서까지
뜻을 관철시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중국을 넘어 세계의 제조업 흐름이 어떻게 될지는
거리전기의 상태를 잘 관찰하면 조금쯤은 예측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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