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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관정도서관 서재

[도서리뷰] 내가 평생 손해만 보고 살았던 이유 - 가나자와 사토시, 지능의 사생활

자청 유튜브에서 추천해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을 읽고서야 내가 지금껏 손해만 보고 살았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계속 똑같이 손해만 보면서 살았을 것이다.


절판 이후에 자청 유튜브를 통해 재조명되었고,

2020년 5월에 "지능의 역설"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나는 도서관에 하나 남아있는 구판을 빌려서 냉큼 읽었다.

 

낡았다 낡았어...

"근데 누구길래 사람 지능에 대해 이렇게 왈가왈부하십니까?"

할말하않..

저자인 가노자와 사토시는 진화심리학자로서, 

영국의 명문 대학 중 하나인 런던정치경제대학의 "Reader"로서, 

한국 직책으로 따시면 부교수 정도 되는 것 같다. 

일본인처럼 생겼지만, 미국인이다. 일본말을 아예 못할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흑인들은 지능(IQ)이 낮아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객관적으로 흑인 여성은 다른 인종에 비해 매력이 떨어진다" 

등의 멘트를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하면서

런던정경대학으로부터 12개월간 저술 금지 처분을 (그래서 reader인가?) 받았고

동료 진화심리학자들로부터 

"사토시의 발언은 진화심리학을 대변하지 않는다" 하는 리뷰글을 수십통 받아낸 

진화심리학계의 전설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그런 인물이다. (출처)

 

당연히 이번 책 역시 논란거리 투성이고

본인도 저자의 말에서 "어떤 가치판단이 들어가있지 않은 객관적 사실일 뿐이다"

라고 밑밥을 던지지만,

이미 논란거리가 될만한 주제를 골라서 지능과 연결시켰다는 것부터

저자의 가치판단이 들어가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야행성인 사람의 지능이 아침형 인간보다 더 높다.
  2. 술, 담배, 마약을 하는 사람의 지능이 일반사람보다 더 높다.
  3. 진보적 지식인의 지능이 보수주의자보다 더 높다.
  4. 무신론자의 지능이 기독교신자보다 더 높다.
  5.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의 지능이 지고지순한 사람보다 더 높다.

딱 봐도 논란거리들만 다뤘다. 성, 종교, 정치...

저자가 말하는 "지능"이란, 말그대로 IQ로서 다시 말하면 계산능력 정도 될 것 같다.

IQ가 높은 것과 반대되는 개념이라 함은, 다시 말해 IQ가 낮은 행동은

오히려 우리가 보기에는 자연스러운 행동들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등장한 390만 년 전(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한 약 20만년 전까지 뇌가 진화한 것에 비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뇌는 아주 미미한 진화밖에 겪지 못했을 것이므로

우리의 뇌는 원시상태 그대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때문에 해가 뜨면 움직이고, 해가 지면 동굴로 들어가 얌전히 잠자는 것보다는

좀 더 새로운 세상에 빨리 적응한 "야행성"이 지능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고,

승자독식의 원시체계에서 벗어나 공평한 분배를 주장하는 진보지식인의 IQ가

평균적으로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책이 가진 첫 번째 문제는 "더 높다"라고 하는 차이가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불륜과 IQ의 상관관계를 그린 아래 그래프를 보자.

불륜을 저지른 사람의 지능이 더 높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남자의 경우 꼴랑 1.9, 여자의 경우엔 3.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조사한 설문결과인지도 불명확해서

온전히 실험이 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 IQ 테스트 좀 풀어보세요. 근데 혹시 불륜한 적이 있나요?" 하고 물어봤으려나.

 

두 번째 문제는 IQ에 대해 아무런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책의 서두부터 천명한 점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래서 뭐 어쩌랍니까?" 하는 의문이 샘솟는다.

불륜을 할 수록 IQ가 높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불륜을 하는 사람의 IQ 평균이 높다는 것이니

"자, IQ를 높이러 가볼까" 하고는 룰루랄라 불륜을 하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애초에 그러면 안된다).

 

게다가 IQ가 높다는 점이 "현명하다"라는 말과는 오히려 반대되는 경우가 많다고

책에 쓰여 있음으로서 굳이 IQ를 높일 이유조차 사라지게 했다.

IQ가 높으면 사회 상식과 반대로 행할 경우가 많으므로

"현명"한 결론과는 다른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 책은 "농구선수들은 일반인보다 키가 크다" 정도의 글밖에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고서야

평생 손해보지않는 법을 깨우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문구 때문이다. 

그것도 본론이 아니라 프롤로그 정도에 위치한 문구로,

"죄수의 딜레마는 여러 번 되풀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성립되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서로 격리된 곳에 같이 두 공범에게, 

혼자 자백을 하면 바로 석방, 혼자 묵비권 행사시 가중처벌이라는 조건을 줬을 때

죄수의 선택을 다룬 '죄수의 딜레마'.

만일 상대방 공범을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증인보호 프로그램'이 잘 구축되어 있다고 하면

무조건 자백을 하는 것이 이득이다.

하지만 상대가 가중처벌 이후에 나에게 복수하러 올 가능성이 있다면

오히려 침묵을 지키는 것이 이득이 될 수 있다.

 

뇌가 진화해온 과정에서는 사람 간의 관계가

'완벽하게' 분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굉장히 오랜 기간 공동체 생활을 해오면서, 

지금 스쳐가는 상대방은 필시 한 번 쯤은 다시 볼 사람이었고

(현재도 그렇지만, 원시 상태의 최대 부족 규모는 150명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엔 지금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상대방을 조금 더 위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이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 반경이 굉장히 넓어진 현대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말이 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공공장소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을 다시 볼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때문에 좀 더 과감해져도 상관없다- 라는 것을 책을 읽고서야 깨우칠 수 있었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위축되는 것이 결국에는 비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이 문구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1년에 100권의 책을 너끈히 읽는 삼성전자 권오현 회장도 

'좋은 책'으로 분류할 수 있는 수는 3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하니, 

이 정도 수확이면(한 문장일지라도) 꽤 큰 것 아닐까?

당장 습관이 되어버린 뇌의 판단 구조를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신경가소성 (plasticity) 원리에 따라 차츰차츰 개선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