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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관정도서관 서재

[도서 리뷰] 아버지의 역사 - 무라카미 하루키, 고양이를 버리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라는 무라카미 하루키 연작 소설이 있다.

유사한 주제가 되풀이 되는 단편소설의 모음인데, 

한 주인공은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하겠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의절한 채 지내게 된다.

"이런 고집불통인 가족이 있으려나" 하고 감탄했지만,

나중에 보니 하루키 본인의 이야기였다. 소설로 짧게나마 풀어낸 것이다.

그 구절 이외에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전무했던 하루키가 

2020년 10월, 아버지에 대한 에세이를 써냈다. 

하루키가 1949년 생이니, 결심하기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이 흐른 셈이다.

2020년 10월 작, 고양이를 버리다


하지만 막상 책 속에는, 왜 그렇게 아버지와 의절했어야 했는가 하는

구체적인 갈등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기승전결이 존재하지 않는, 어디까지나 에세이인 것이다.

오히려 청일전쟁에 참여했던 아버지의 역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짧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서술하는 것이 전부이며

갈등에 대한 이야기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는 문구가 끝이다.

하루키가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 직후에

피해자들의 삶을 인터뷰한 책이 있다. "언더그라운드"이다.

말 그대로 인터뷰인지라, 기승전결따위 없다.

아, 결말은 있다. 인터뷰 대상 모두 사린가스가 살포된 지하철에 타게 되니까.

다만 인터뷰의 목적은 피해자 개개인의 삶을 책으로 담는 것이었기에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고양이를 버리다" 역시 하루키가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쓴 책이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아버지가 신념을 길러오셨고, 자신에게 기대를 하게 되셨는지

어린 시절 몇 안되는 추억 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떤 의미인지 

글자로 풀어보면서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는 것이다.

 

하루키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통통 튀는 생동감은 찾을 수 없고, 

일러스트마저 늘상 맡겨왔던 오하시 아유미나 안자이 미즈마루가 아니라

좀 더 무거운 타입의 수묵화(비슷한 종류)가 들어갔기에 상당히 진지하다.


책을 읽은 후에는 내 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해서 아버지들은 그렇게 고집줄통이 되어버리지만,

그럼에도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는지,

나도 언젠가는 이해할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