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토요일 오전 10시 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실 팀원들이 관악산 입구로 이동하여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등산을 하다보면 아픈 곳이 있는지, 현재 사용하는 보호대가 있는지,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 혹은 보호대를 고를 때 주의깊게 보는 요인이 있는지" 등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기록했더랬다.
"이렇게 고생해서 뭘 새로 알아내는 게 있으려나 했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네" 교수님이 감탄하며 말했다. 새로 알아낸 사실이라 함은, 보호대의 이미지에 대한 것이었다. 운동을 하며 건강하길 바라는 사람들은 '보호대' 자체가 가진 '약자'의 이미지를 싫어했다.
보호대를 찬 젊은 사람들 중에는 배우 이시영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접한 무릎 보호대를 고대로 구매한 사람도 있었다. 해당 제품은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곳이 없어서, 실물을 보지도 못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구매를 진행한 것이다. 해당 제품은 슬개골의 움직임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작된 것인데, 두께에서 알 수 있듯 "보호" 용이라기보다는 "나 운동 좀 하는 사람이야" 하고 말하는 듯 하다.
연구실의 방향이라고 하면, 재활관련 연구를 하며 신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제품들을 주로 개발해왔더랬다. 이런 연구실에서 창업을 한다고 하면 현재 방향으로는 부족하고, 엘리트 스포츠인을 위한 제품을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 되겠다. 그 기술을 활용하여 일반인을 위한 제품을 만들면 창업이 진행되는 것이고, 더욱 발전시킨다면 시장제품으로는 가치가 없겠지만 장애인들의 거동을 위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위 내용들은 사실 순진하기 그지 없는 생각이다. "전문 스포츠인을 위한 연구"라는 게 말도 안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웨어러블이라는 것이 참 모호한 분야라서, 완전 기계의 영역도 아니고, 완전 인간의 영역도 아니다. 누가 제일 빠른 자동차를 만드나 대결하는 레이싱 게임도 할 수 없고, 누가 제일 빠른가를 대결하는 달리기 대회에서도 사용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선택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을 위한 달리기 대회 같은 것이다. 이런 대회가 일반인들에게 홍보효과를 가져다 줄 수는 없다. 철저히 "재활 제품"으로서의 가치를 두고 경쟁하게 되는 것이다. 보호대를 제작하면서 엘리트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지 확신이 들지 않는 이유이다. 엘리트는 최소한의 보호대를 착용하는 것을 전제로 경쟁하기 때문에 웨어러블의 역할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영단어 중 Sincerely 라는 단어는 "왁스를 바르지 않은" 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각가들이 대리석 조각을 하다가 실수로 파손이 되면 왁스 발라 수정을 하곤 했는데, 왁스를 바를 필요가 없이 통째로 조각을 해내는 사람들을 진또배기로 여겼다는 뜻이다. 이런 문화를 바꿔놓은 것은 물론, 변기를 고대로 올려놓고 "샘"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샹이나 엉망으로 사람을 그려놓곤 "입체파"라고 이름 붙인 피카소 같은 게임 체인저들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이런 게임 체인저들이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살펴보면 웨어러블 같은 신사업분야가 어떻게 변모해 나갈지 예측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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