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에 대해 묘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왠지 모르게 스스로가 별 거 아니게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별 거 아니게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으로, 타인이 없는 공간에서는 스마트폰을 두 시간, 세 시간이라도 들여다 보며 낄낄댈 자신이 있다. 요컨대 속물이다.
대중교통을 다면, 으레 주위를 둘러보는 습관이 있다.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는 타인을 관찰하며 "난 다르거든" 하는 우월감을 맘껏 즐기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 번은 지하철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젊은 남성과 눈이 마주쳤고, 그가 대뜸 뭘 보냐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부산이었다) 이제는 되도록 얼굴을 관찰하려고 하진 않는다.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주말, 카페로 책을 읽으러 갔더랬다. 카페 역시 다수의 "타인"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속물인 나로 하여금 더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창가의 자리에서 편안히 책을 읽던 중 (옆 자리는 거리두기로 인해 비워진다)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백색소음을 틀어뒀던 에어팟을 빼고서 옆을 보니, 웬 여성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예?"
"저 사진 찍으셨냐구요."
"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아닌데요- 찍는 거 봤거든요- 여기서 뭘 어떻게 찍어요- 휴대폼 좀 보여주세요- 하는 난리통에 카페 점장도 곁으로 오게 되었다.
점점 상황이 악화일로를 향해가는 것을 느낀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하는 소리가 하도 커서 여자의 신경질 섞인 멘트들과 점장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도 묻힐 정도였다. 5초 정도의 정적 후에 (나만 느껴졌다) 차분히 점장에게 말을 꺼냈다.
"저 이 분 온 뒤로 휴대폰에 손도 안댔거든요. 맞죠? (여자가 씩씩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점장님이 제 휴대폰 앨범 들어가서 사진 찍힌 게 있나 봐주세요" 하며 나는 식탁에 얌전히 엎드려 있는 아이폰 SE 1세대를 가리켰다. 안 그래도 작은 사이즈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듯 보였다.
점장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휴대전화를 들어올렸다. "비밀번호가 있는데요" "숫자 2 여섯 개요" "아 예"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까 싶은 만담이 이어졌다. 점장은 아이폰 유저였는지, 다행히 사진첩을 보는 방법에 대해 추가적으로 묻지 않았다.
"없는데요" 1분쯤 흘렀을까, 점장이 여자를 보며 말했다. "제가 좀 볼게요" 하고 뻗어오는 여자의 손을 점장이 급히 몸을 돌려 막으며 내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난 이미 아무렴 어떻냐는 생각이었다. "네. 한 번 보세요." 여자는 휴대폰을 낚아채듯 집어들고는 이런 저런 조작을 했다. Recently Deleted Photos 폴더를 보고 있겠거니- 싶은 생각이었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여자는 이내 "소란을 피운 것 같아 죄송하네요" 라고 점장에게 말하곤 휙 뒤돌아서 사라졌다. 폭탄을 돌리듯 휴대폰을 건네 받은 점장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나의 아이폰을 돌려주었다. 점장마저 슬금슬금 사라지고 나자, 나는 잠시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긴 척을 하다가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폰부스' 라는 영화가 있다. 발신자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은 채, 어서 받을 것을 재촉하는 전화벨 소리가 얼마나 폭력적인지에 대한 영화라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봉변을 겪고 나니, 폭력적인 것은 전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폭력은 사람 자체에서 나온다. 사람이 제공하는 전화든, 시선이든, 의심의 눈초리든 뭐든 간에, 폭력적인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은 폭력적일 수 밖에 없다.
폭력의 피해자 -이 이야기에서는 나-는 그럼 어떻게 이 끔찍한 기억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나의 경우엔 샤워를 하며 침을 퉤 뱉고, 편의점에서 조각 케익을 사다가 맥주와 함께 마셨다. 그리고 친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러고서, 다음 번에 불시에 찾아올 타인의 폭력이 부디 이 정도 선에서만 정리되기를 바랐더랬다. 참으로 소시민스러운 대처가 아닐 수 없지만, 소시민스러운 폭력에는 소시민스러운 대응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사생활 들여다보기 > 뇌 속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일1포스팅] 일주일간의 휴가 (0) | 2021.09.04 |
---|---|
기계과에서 내가 손을 놓고 있는 이유에 대한 고찰 (0) | 2021.08.19 |
대학원생이 교수님 주도 창업 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0) | 2021.08.13 |
"이카루스의 날개가 뭐 어때서?" - 과거의 영광에 대한 집착 (0) | 2021.08.09 |
타인과 함께 일하는 것은 왜 어려울까? - 직장 vs. 대학원 (0) | 2021.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