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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뇌 속 풍경

"이카루스의 날개가 뭐 어때서?" - 과거의 영광에 대한 집착

 연구실의 박사 형이 해준 이야기이다. 산업공학과 수업을 들을 때, "이카루스의 날개"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들은 경영학에 가장 가까운 수업이 산업공학과 수업이라는 것에서 시작한 대화였다. 경영학과 산업공학이 비슷하던가? 내가 알기로는 산업공학이 훨씬 학문에 가깝다. 


추락하는 이카루스

 

 이카루스 이야기는, 어린시절 읽었던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미로에 갇혔던 발명가 다이달로스는,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서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 때 아들에게 "너무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면 태양열 때문에 밀랍이 녹으니 주의해라" 라고 일러둔다. 하지만 성급하기 짝이 없던 이카루스는 하늘을 난다는 감정에 취해 하늘 높이 올라가고, 결국 밀랍이 모두 녹아 추락한다는 것이다.

 

 박사 형이 수업에서 들은 이야기는 이에 대한 교훈이었다. "서울대 학생들은 보통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대학원으로 많이들 갑니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잘 한 일이 공부였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더 공부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죠. 객관적인 판단 없이 과거의 경험만 기대어서 실패하게 되는 사례를 이카루스의 날개라고 합니다" 


 사실 '이카루스의 날개'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 경영학과 답구나 싶었다. 그냥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례를 괜히 멋진 이름을 붙여다가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입에 착 감길 뿐만 아니라 잊기도 힘들다. 브랜딩의 가치가 중요하다면, 경영학과나 산업공학과도 충분한 효용을 할 테다.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나도 그럼 별 생각없이 대학원으로 온 게 아닐까" 하는 심오한 고민에 잠겼더랬다. 하지만 역시, 이런 명언들은 뭘 말하고 있는지가 불명확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카루스가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날아오른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 흥에 겨워 분출되는 도파민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다. 그것을 확대해석해서는, 과거의 영광에만 기대어 선택을 내리는 경우도 이카루스의 날개라고 부른다면 세상의 모든 실패가 포함될 것이다.

 

나영석의 날개

 논의의 진행을 위해 "과거의 영광에만 기대어 선택을 내리는 경우"를 이카루스의 날개라고 칭해보자. 이것 역시 문제가 많다. 왜나하면 해당하는 모든 경우에 추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시대의 흐름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경우에는 여전히 상승기류를 타고 날아오를 수 있다. 추락하는 것은 결국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에만 기대어 선택을 내리는 경우"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카루스의 사례와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지만, 이 정도쯤 되니 비로소 "그렇다면 추락할만 하군"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보자. 나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대학원에 입학한 것일까? 자신있게 말하자면, 맞다. 제조업 분야에서 최신 기술을 활용하며 일하고 싶은 나로서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곳이 대학원이었다. 이제 문제는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한 상승기류를 타거나, 적당한 곳에서 활강을 시작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것인데 이는 아직 내가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일단은 주어진 상승기류를 최대한 타고 오르는 것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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