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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한눈에 보기/산업 트렌드

이제 와서 새로운 에어컨/냉장고를 개발한 이유 - $200 M의 Phononic

 기계항공공학부 복수전공을 위해서는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 중에 핵심이 되는 교과를 뽑으라면 네 개가 있다. 동역학 / 고체역학 / 유체역학 / 열역학. 이 중에서 동역학 / 고체역학은 단단한 물체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반대로 유체와 열역학은 흐물흐물한 물체들을 다룬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거 참, 기계공학 진또배기들이 들으면 어처구니없어 하겠지만, 내 설명력의 한계는 여기까지다. 


 나로서는 단단한 물체를 다루는 것이 보다 이해가 쉬웠다. 유체와 열역학은 이해하기 상당히 어려웠던 기억이 나는데, 학점 역시 이해도에 비례하여 주어졌더랬다. 하지만, 현재 기술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학문은 아무래도 유체와 열역학 계통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로봇의 발전보다는 배터리의 발전이 보다 빠르게 이뤄졌고 여러 산업에 파급력이 더욱 컸기 때문이다. 배터리 효율은 열과 유체에서 보다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에, 그쪽 학문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배터리 역시 이해하기 어려울 테다.


Phononic CEO Tony Atti

 

 그런 점에서, 새로운 방식의 냉장고 / 에어컨을 만들고 있다는 Phononic에 대한 기사를 봤을 때 "이게 뭐지" 싶었더랬다. 에어컨과 냉장고가 새로워지면 얼마나 새로워진다는 거지? 기사 속에는 "이렇게 해서 다릅니다" 하고 쓰인 파트가 분명 있었지만,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학부생 때 공부 좀 해둘걸...

 

열전소자(펠티어 소자)의 원리,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Phononic 에서 들고 나온 냉각 방식은, 열전소자를 활용하는 것이다. "어라? 어디서 들어봤는데?" 하면 좋고, "그건 또 뭐람?" 해도 상관 없다. 중요한 것은, 열전소자를 활용한 냉각방식이 최초의 냉장고에 사용한 방식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열전소자는 어떤 도체에 전류를 가했을 때, 열이 한 곳으로 몰리면서 다른 한쪽은 시원해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프랑스의 과학자 장 펠티어가 발견해냈기에 "펠티어 소자"라고도 불린다.

 

 펠티어가 해당 사실을 발견한 것은 1830년도였는데, 당시에는 당연히 전류를 안정적으로 흘려보낼 도체를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때문에 펠티어 소자를 활용한 냉장고는 초반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졌고, 현대의 에어컨 방식은 보다 간단한 "냉매" 방식을 사용한다. 액체로 존재하는 냉매가 기화되면서 주변의 열을 흡수해가면, 주변이 상대적으로 시원해지는 것이다. 

 

Phononic의 열전소자

 

 그렇다면 열전소자는 어디에 쓰이고 있었을까? 냉매를 활용하는 방식보다, 월등히 작은 부피로 열을 빼앗아갈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 등에서 발생하는 열을 제거하는 것에 쓰여왔다. 해당 기술은 CPU의 연산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상당히 기여했다. 그게 1980년대였다. 그런데 이제 다시금, 열전소자를 냉장고에 쓰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열전소자 냉장고

 

 Phononic의 CEO Tony Atti는 무려 NASA에서 연구하던 과학자였다. 그리고는 NASA도 때려치우고서 MBA를 취득하곤 투자업계로 진출했다. 2009년에 열전소자를 연구하는 교수와 함께 창업을 한 것이 Phononic이다. Atti 본인의 박사 학위 분야가 Organic Chemistry인 것을 감안했을 때, 정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열전소자 냉장고는 냉매를 활용하는 냉장고보다 효율이 훨씬 떨어지지만, 부피를 그만큼 줄일 수 있다. 또한, 흔히 "백색 소음"이라고 부르는 냉매 액화장치의 소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동이 없기 때문에 안정적인 보관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단순한 휴대용 아이스크림 냉장고 뿐만 아니라, 백신 냉장고 등에도 쓰이고, 더 나아가서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들에도 냉각장치로 사용될 수 있다. 


2조원의 Peloton

 오늘 연구실의 박사 선배가 과거에 창업을 하고자 했던 경험을 말해줬다. 스마트 운동기구에 대한 구상을 2015년부터 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런 게 있으면 벌써 있었겠지" 하면서 아이디어를 접었는데, 요즘 와서 미국의 펠로톤 같은 단순한 운동업체가 $1.8 B (약 2조 원) 에 기업가치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참 아리송하다. 물론 당시에 창업했다고 해서 당연히 잘된다는 보장은 없지만서도, 기회라는 것은 정말 쏜살같이 달려가는구나, 싶다.

 

 Phononic 같은 기업은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잘도 개척해가고 있다. CEO 역시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 현재 전문가가 되어 있으니, 나 역시도 주변을 잘 둘러보며 다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