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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기계분야 특허 읽는 법! (순서 파악하는 방법과 청구항 읽는 방법)

 살면서 논문은 커녕 특허도 한 번 읽지 않고 살아가면서도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을테다. 하지만 연구자로서는 그럴 수 없다. 논문보다도 특허가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고 (법적으로 보호받는 것은 논문이 아니라 특허이다)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는 세밀한 내용들(예를 들면, 제품의 원리 뿐만이 아니라 만드는 방법) 역시 특허에는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요한 문서이지만, 특허를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차라리 논문이 쉬운 편이다. 논문은 다른 사람들에게 연구 성과를 설명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만, 특허는 그렇지 않다. "이 연구는 내 것이다" 라고 보호 받을 수만 있다면 그만일 뿐, 남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허는 기본적으로 "기술을 세상에 공개하게 하여, 기술 발전에 이바지하되 독점권을 주겠다" 라는 정책으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러므로, 특허 문서가 상정하는 '예상 독자'라 함은, 특허 읽기를 업으로 삼는 변리사들이나 법조인들 뿐이다. 특허 문구들이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라 법률 용어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몇 가지 규칙만 잘 파악하고 있다면 특허는 기계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다. 


특허문건 US9351900B2

 우선 "특허"라고 불리는 문서의 종류부터 알아야 한다. 특허는 출원과 등록, 두 단계로 나뉜다. 출원 단계의 문서는 공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출원은 말 그대로 "등록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는 신청서이기 때문이다. 출원단계에서는 문건 번호가 A로 끝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등록이 되고 나면, B 나 C 등 다른 알파벳이 붙는다. 위 사진에 나온 특허는, 2013년 9월에 제출되어 21개월 뒤인 2015년 6월에서야 출원 번호가 나왔고, 또 11개월 뒤에서야 등록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거의 3년이 가깝게 걸린 셈이다. 

 

특허 문건의 모습

 특허는 총 여섯가지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 배경과 발명품의 요약, 더 자세한 설명, 이를 활용한 실험 등으로 이뤄지는 나름 체계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문제는 구성을 그렇게 친절하게 해놓고 작성 방식을 더럽게 딱딱하게 해놓았다는 것이다. 위 사진처럼, 아이템에 대한 간략한 설명(발명자 등)이 끝나면 100 페이지에 달하는 그림 자료들이 연달아서 나온다. "이게 뭐야?!" 하고 놀랄 새도 없이, 100 페이지가 끝나면 끝도 없는 줄글이 나온다. 이 때 사람들이 많이들 포기하게 된다. 

 

 논문처럼 아이템을 설명하는 글 사이 사이에 해당하는 그림들이 들어가 있다면 이해하기 편하겠다만, 앞서 말했듯 특허는 이해를 편하게 하기 위해 작성된 글이 아니다. 규칙에 맞춰 작성되어야만 기계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두고 이권 다툼을 할 수 있다. 때문에, 문서를 읽는다면 위 여섯 단계를 모두 읽을 필요없이 "발명품을 활용한 실험" 페이지만 읽는 것이 좋다. 해당 발명품을 통해 어떤 효과를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특허에서 요청하는 청구항, 즉 보호받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와 더불어 언제 작성된 특허인지 확인하면 좋다. 20년이라는 특허 기간을 생각했을 때, 언제까지 보호받는지 확인할 수 있다. BOA 다이얼의 경우 1997년에 작성되어 2017년에 만료되었음을 지난 글(링크)에서 설명한 바 있다.

 


 아하! "실험" 파트만 읽으면 된다니, 특허도 간단히 읽을 수 있는 거였구나! 싶겠지만, 또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실험 파트를 따로 빼놓지 않은 특허도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오늘 읽어야 했던, US9351900B2 문건이 꼭 그러했다. 100 페이지에 걸친 그림 자료 이후에 50 페이지에 걸친 끊임없는 아이템 소개가 이어진다. 이 때는 꼼짝없이 글을 읽으면서 핵심 내용을 발췌해야 한다. 알고 싶은 내용이 제품의 형상에 관한 것인지, 제품으로 인한 효과에 관한 것인지 잘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빠르게 발췌가 가능할 테지만, 보통은 둘 다 알아야하기 때문에 소용 없는 일이다. 

 

청구항의 모습

 

 우여곡절 끝에 제품에 대해 파악했다면, 특허에서 요청하는 권리가 무엇인지 볼 차례다.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발명자들이 생각하는 발명품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청구항은 두 개로 나뉜다. 독립항과 종속항. 독립항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면서 아이템을 설명할 수 있지만, 종속항은 해당 독립항을 좀 더 세밀하게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특허는 독립항과 종속항의 수준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지는데, 종속항에서 별 시덥잖은 세밀한 것까지 다 막아두었다고 하면 가격이 비싸질 테다. 그러므로 독립항만 충분히 숙지하는 것을 목표로 읽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독립항 두 개의 차이점 비교 (색이 칠해진 부분)

 

 하지만 그렇다고 독립항들이 서로 다른 것만도 아니다. 위 사진처럼, 상당히 긴 두 개의 독립항이 딱 한 문장으로 차이가 나기도 한다. 위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본 발명품은 A, B, C, D 로 구성된 제품입니다" 와 "본 발명품은 A, B, C 또는 D로 구성된 제품입니다" 하는 독립항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럴 거면 뭐하러 독립시켰냐! 하는 일갈이 나올 정도이지만, 발명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화를 삭히며 핵심적인 내용만 또 발췌해서 읽도록 하자.


 특허의 목적이 "기술을 공개해라, 그러면 독점권을 주겠다" 라는 취지에 있다고 했지만, 현재 특허의 방향은 "독점권을 주겠다" 에 맞춰져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기술 공개를 통해 사회의 더 빠른 기술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해당 부분에 대한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내가 특허를 쓰게 된다면 꼭 알아먹기 쉽도록 써야지.


추가 관련 글

1) 특허 읽는 법에 관련된 논문도 있다!

 

Tips for reading patents: a concise introduction for scientists

(2018). Tips for reading patents: a concise introduction for scientists. Expert Opinion on Therapeutic Patents: Vol. 28, No. 4, pp. 277-280.

www.tandfonline.com

2) BOA 다이얼에 대해

 

BOA Dial의 종류, 원리 그리고 특허 - 종류편

 등산화 부류를 보면 신발끈 직접 묶지 않고 다이얼을 돌려서 조일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것들이 눈에 띈다. "음 편리하겠군" 싶으면서도 가격이 나가는 종류인지라, 보통은 직접 구매하지는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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