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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뇌 속 풍경

기분이 저기압일 때는 헬스장을 가라 - 딥러닝과 쌍둥이칼

 그제 어제 오전 한 시경에 잠에 들다보니 아침에 제 때 일어나지를 못했다. 어제는 그나마 주섬주섬 챙겨서 바로 헬스장에 가서는 50분 가량 운동을 했지만, 오늘은 에라 모르겠다 더 자버렸다. 뚱띠 뚱띠 학교로 걸어가서는 아홉시 반 경에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에는 그렇게 저기압은 아녔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일이 손에 잘 잡히질 않았다. 괜히 이것 저것 들춰보고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상상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 수업이 하나 있어서 망정이지, 그것 마저 없었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오후를 보냈을 테다. 

 

 수업이 끝난 후 저녁을 먹을 때에도 기분이 풀리지 않아 편의점에서 메뉴 고민을 한참 했더랬다. 결국엔 편의점 음식을 먹었는데, 뭘 먹긴 한 건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뇌가 먼지 뭉치 같이 느껴진다고 하면 적절하겠지. 한입 베어물면 솜 맛이 날 것 같다. 

 

 저녁을 먹은 후 친구가 기운 내라며 초콜릿과 레모나를 건네주기에 눈물이 핑 돌뻔했는데, 꾹 참았다는 것은 과장이고 상당히 고마웠다. 그리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는 헬스를 하러 이동했더랬다. 저녁 때 가보니 아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여 현타가 살짝 왔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할 수 있는 운동부터 하기 시작했다. 

 

 사실 저기압인 이유는 원래부터 명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헬스를 하고 나니 비유할 대상이 생겨서 말하기가 좋은 것 같다. 헬스가 좋은 이유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해야할 운동이 목록으로 작성되어 있고, 그것을 따라 시행해주면 된다. 그렇게 단순한데도,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 몸으로 결과물이 나타난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연구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뭘 해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던 것이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오늘 팀미팅을 하면서 아직 정식 입학도 하지 않은 학부연구생보다도 연구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관심 가지고 공부했던 딥러닝은 제대로 건드려보지도 못하고, 웬 GUI 개선 작업을 하거나, 잘 작동하지도 않는 장치를 만지작 거리거나, 심지어 다음 주부터는 또 다시 납땜과 배선의 늪으로 빠져들어야 하는 것이다. 

 

칼 브랜드, 헹켈 즈윌링

 이런 고민은 예전에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다른 친구는 부엌칼을 샀던 경험을 이야기해줬다. "쌍둥이칼이라고 들어봤어요?" "아뇨, 첨 들어봤는데요" "그냥 칼인데도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요. 별다를 것 없이 그냥 칼인데, 디테일이 다르다나. 튼튼하긴 한 거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단순하면 그 와중에도 퀄리티를 높이는 방법을 찾으면 다들 좋아하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다. 주변에 딥러닝이나 모션 트래킹 같은 팬시한 연구주제들 속에 있다보면, 내 존재가 흔들리기 마련인 것이다. 그 와중에도 중심을 잡고 내가 맡은 주제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랑비는 맞는다 하지만 폭풍은 내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