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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뇌 속 풍경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 - 블랙 스완: 기가 막히는 공포영화

 내가 처음으로 봤던 공포영화는 2013년도 개봉한 컨저링이다. 연도까지 잘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첫 여자친구와 사귀기 전날 봤기 때문이다. 썸을 타던 것은 기분 좋았지만 영화 자체는 기가 막히게 무서웠다. 귀신이 안 나오면서도 무서운 영화라기에 내심 안도하고 봤는데 후반부에 쏟아지는 귀신에 아주 까무라쳤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는 딱히 공포영화랄 것을 본 적이 없다. 반면 스릴러는 아주 좋아한다. 공포와 스릴러의 차이는, 전자가 귀신이 나온다면 후자는 사람만 나온다...라고 멋대로 정의하고 있다. 군 시절에 봤던 곡성의 경우에는 공포일까 스릴러일까? 여튼 그것도 재미있게 봤다. 

 

블랙 스완, 2011 예고편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볼만한 영화를 찾아보다가 "언젠가는 봐야지" 하고 남겨뒀던 블랙스완을 넷플릭스에서 꺼내들었다. 결과적으로는 혼자 맥주에 저녁 겸 야식을 먹으면서 아주 오들오들 떨면서 봤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공포영화였다. 귀신이 나오냐고? 아니다. 그럼에도 공포영화로 분류한 이유는 정말 '공포'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스릴러' 장르에서 느껴지는 스릴, 즉 긴장감 수준으로는 담아내지 못할 감정을 영화에서 보여줬다. 공포를 연출하는 방법이 영화 이터널 선샤인 등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감독의 다른 작품을 찾아봤더니 같은 감독은 아니었다. 하지만 러셀 크로우 주연의 "노아"는 영화관에서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같은 감독이었다. 그 영화도 연출이 참 대단했더랬지.

 

 영화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발레 공연 백조의 호수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배우와 단장 등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린 영화이다. 나로서는 백조의 호수를 본 적도 없는 채로 잘도 재밌게 봤으니, 원작 백조의 호수와 어떻게 다른지, 영화에서 나온 백조의 호수 줄거리가 정확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게 공포를 심어줬던 부분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서서히 광기를 드러내는 장면들을 보면서 "아 내가 저 상황이라면 정말 무섭겠다" 하는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순간 순간 환상을 보았다가 정신을 차리는 모습들을 보고 오들오들 떨면서 맥주를 마셨다.

주인공 나탈리 포트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영화에서 그리는 백조의 호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조와 왕자가 사랑에 빠지려고 하는 찰나, 흑조가 등장하여 왕자를 유혹해버리고, 버림받은 백조는 죽음을 택한다. 이런 줄거리로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장은 "백조와 흑조 역할을 한 사람이 맡는다" 라고 선언한다. 영화 주인공인 나탈리 포트만(극중 이름은 니나)은 위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 한없이 아름답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백조 역할에는 딱이겠으나, 흑조의 역할까지 맡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일련의 사건들로 니나가 공연 주인공 배역을 따내고 흑조의 악한 모습까지 품어내야 하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이다. 저렇게 웃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애인을 빼앗고 농락하는 악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예회 같은 학교 축제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실수를 제대로 했던 경험이 있다. 곡은 비틀즈의 렛잇비였는데, 집에서 연습하던 88 건반에 비해 학교에서 마련한 전자피아노는 건반 수가 턱없이 부족했고, 왼손 반주의 범위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정도였다. 조금 진행하다 당황하여 머리를 감싸 쥐니 전교생이 (5~6학년 정도가 모였던 것 같으니 300명쯤 되지 않았을까?) "괜찮아! 괜찮아!"를 외쳐줬다. 뭐에 홀린듯이 왼손 반주가 넘치는 대로 다시금 곡을 완주했더랬다. 

 

 한 번 대형 사고를 치고 나니 이후로는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할 때 아무런 부담 없이 척척 해내게 되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로, 이후로도 계속해서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할라치면 어김없이 잔뜩 긴장하여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그런 나로서는, 저렇게 매일 매일 공연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떤 기분일까? 중간에 실수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은 그들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일까? 


 여담이지만, 넷플릭스에서 재밌는 영화를 고르는 방법을 이제 깨달았다. "아 볼 거 없다" 하면서 목록을 무작정 넘기지 말고 유명한 영화를 골라 보는 것이다.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 말고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나 다른 콘텐츠들은 100이면 95%가 재미없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