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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이 벤처 사람을 만나면 물어봐야 하는 것 - 고영하 회장 2탄

 스타트업계의 대부인 고영하 회장님과도 멘토링을 진행하게 되었고, 지난 글(링크)에서 다짐했던 일을 시행해봤다. 그가 어떻게 46세의 나이에 창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 그 동안에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한 것인지 등을 여쭤볼 수 있었고, 의외로 또 흔쾌히 답해주었다. 

 

 다음으로 쓸 이야기는 어쩌면 고영하 회장이 그다지 언론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내용일 수도 있고, 사생활에 불과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을 "창업을 해야 대한민국에 미래가 생긴다" 라며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분이시기에 이 정도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키백과(링크)에는 연세대 의대를 중퇴했다고만 나와있는데, 정말이었다. "의대 그만두고 창업을 했나?" 아니었다.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투옥된 것이다. 학교는 제적되고 이후로도 계속 운동권에 참여하다 수배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하셨다. 

 

 하나 더 숨겨진 사실은 가족이 의사 집안이라는 것이다. 부모님 뿐만 아니라 친지들까지 모두 의사였다고 하셨던가, 아무튼 많은 의사들을 보유한 집안이었다. 결국 집에 돈이 많았던 것이다. 출소 이후,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가 1977년(26세 무렵)에 처음으로 무역업 분야에서 창업을 시작했고, 1980년에 또 다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지명수배가 되어 회사는 파산하고 만다. 

 이후 첫 창업으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 다른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무슨 일이었을까?) 전두환 이후 노태우가 또 당선되는 꼴을 보고서는 "이대론 안되겠다" 라며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하며(주요 인사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에 입문한다. 이후 92년과 96년 총선에 출마했지만 모두 낙마하고, 정신차리고 다시 창업한 것이 1998년 셋탑박스 수출이었던 것이다. 이후로는 지난 번 자료조사 결과(링크)와 동일하다.


 결국 46세의 나이에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포기다" 라며 창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실패하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자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서는 "요즘엔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창업으로 망하더라도 빚이 생기지 않는다" 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젊은 사람들이 창업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미는 상당히 좋은 취지이지만, 고영하 회장 본인의 스토리는 모든 것을 걸고 사회로 뛰어들었던 사람들과 결이 사뭇 다르다. 차라리 "나는 잘 살았기 때문에, 창업이 어려운 시대에서도 열심히 노력해서 이 정도까지 되었다. 너희들은 못 살지만 창업하기에는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내가 힘써보겠다" 라고 솔직히 이야기해줬더라면 더 공감이 갔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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