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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한눈에 보기/산업 트렌드

제품 시연회 망한 후기 - 뒤늦게 고치는 외양간

 마이클 블룸버그 자서전을 소개하는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두둑한 퇴직금과 함께 해고당한 블룸버그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블룸버그 단말기는 시연회 장에서 화면이 켜지자 마자 망가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켜졌다" 라는 사실에 모두들 환호를 질렀다는 사실은 1981년의 기술력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애플 I 컴퓨터가 1976년에 나왔으니까,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2021년이다. 화면이 켜졌다고 환호해주는 사람은 없다.


1976년의 APPLE I 컴퓨터

 

 오늘은 그간 만들었던 어깨 재활기기의 시연회가 있던 날이다. 이렇게 말하니 꼭 작은 중소기업에서 나온 것 같은 두근거림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연구 목적의 제품이었다. 게다가 나는 중간부터 합류해서,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들을 잔뜩 가지고 있다. "어깨 재활기기는 시중에 나온 제품도 꽤 많은데, 왜 새로 만드는 거지?" 같은 질문은 연구의 존재 이유를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꾹 참고 있는 것 뿐이다.

 

 어제 한참을 걸려 최종 마무리 작업을 하고는 호다닥 시연 영상을 찍어서 오늘 발표 준비를 했더랬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실험실에 도착해서 제품을 테스트해볼 때도, 역시 잘 작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팅에 들어가서 작동을 시켰더니 거짓말처럼 기계가 망가져있었고, 화면이 켜졌음에 박수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찌 어찌 핵심 기술만 살려서 간단히 시연을 마치고 나니, 연구실이 희뿌연 게 아닌가. 창문이 열려 황사가 들이닥쳤나 하고 유심히 보니, 내 멘탈이 가루가 되어 날리는 것이었다. 넋이 나간 채로 환기를 시키고 먼지를 털어내느라고 한 시간이 꼬박 걸렸다. 미팅을 한 것도 한 시간이었는데, 뒷수습에 또 다시 한 시간을 쓴 것이다.

황사, 사실은 중국발이 아닙니다...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오던 "아, 방금까지 잘 작동했는데, 이상하게 지금 딱 작동을 멈췄네요" 하는 상황이었다. 블룸버그의 첫 컴퓨터는 시연회 직전까지 오류 투성이었다가, 시연회날 딱 화면만 켜지고 작동을 멈췄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덜 억울할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작동을 하다가, 시연을 하는데 작동을 멈추면 뭐라 할 말이 없다. "이상하게 지금 딱 작동을 멈췄네요" 하는 뻔한 말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한가로울 거라는 예상을 깨고, 여지없이 하루 종일 디버깅을 했다.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원인은 뻔했다. 전원장치가 잘못 연결되어 기기에 과부하가 걸려있었고, 핀이 헐거워져서 접촉불량이 나 있었다. 굳이 시연회 직전까지 잘 작동하다가 멈춘 이유는, 어제 "어라 되네?" 하는 생각에 "그럼 더 만지지 말자" 가 되어 버려 충분한 실험을 하지 않은 탓이다. 

 

아이폰 1 발표 현장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을 발표하는 Macworld에서 사람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고 한다. 한도 끝도 없이 예민하게 굴어서, 유달리 성격이 나쁜 스티브 잡스가 특히나 더 지독하게 굴던 날이었다고 하는데, 왜 그래야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어라 작동 잘 돼? 그럼 이제 만지지마!" 하는 류의 대충 넘기는 습관이 없던 것이다. "그거 또 안될 수도 있으니까 계속 해봐!" 하는 말은, 행여라도 시연회 전날 오류가 발견된다면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뼈라도 갈아넣을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나저나, 시연을 망쳤다는 이유로 한 시간이나 먼지가 된 멘탈을 털고 있었다니 조금 아쉽다. 좀 더 빨리 털어내고 할일을 할 수 있는 강한 멘탈은 언제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