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시 30분 미팅이었다. 늘 그렇듯 줌을 통해 비대면으로 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고, 연구실에서 하기에는 면학 분위기 조성에 방해가 될 것 같아 학교 카페로 나와 있었다. 40분 여 기다린 끝에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면 미팅 해야하지 않겠니?" "아 예, 올라가겠습니다" 그렇게 올라가서는 30분 정도는 더 기다렸다. 16시 40분이 되어서야, "방으로 들어올래?" 하는 전화를 받았다.
대기를 하는 동안 태연의 "Can't control myself"를 들었다. 오랜만에 한참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을 만나서 기분도 좋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차오르는 분노를 달래줬더랬다. 도대체 시간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한 시간 십 분 지난 미팅을 하면서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거지? 교수님 연구실 문을 열면서 두어 번 중얼거렸다. 제발 성질 죽이자.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팅은 아주 순탄하게 흘러갔다. 어제 마음가짐을 열심히 준비하고 간 덕분일 테다. 개별미팅을 하면서 교수님의 연구 스킬에 대해 감탄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어쩌면 내가 교수님을 너무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어쨌든, 풀어야하는 문제를 나름대로 잘게 쪼개서 파악하고 있는 모습은 감탄할만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내게 부족하다고 느껴진 점은, 너무 총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시쳇말로 숲만 보려고 할 뿐, 나무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성향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한 연구의 큰 틀에서의 효과만 이해하고 있을 뿐, 상세한 단계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고 "좋은 게 좋은거지" 라는 식으로 일단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반대되는 성향을 만났을 때 (뛰어난 연구자들은 보통 그러하다) 설명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교수님이 설명하는 "연구실에서 논문이 늦게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한 가지 측면만 보지 않고, 다양한 방향에서 문제를 분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시가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나조차도 연구실 논문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사실, 논문 자체를 목적으로 논문을 읽어본 적이 없다. 논문의 구성 요소들을 파악해보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큰 틀에서 논문의 구성요소는 알고 있지만, 저자가 어떤 고민을 왜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명확히 파악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없다고 하기엔 좀 억울하니,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정도로 포장해도 좋겠다.
한 시간 반 정도 미팅을 하면서, 참 느낀 점도 많이 있었고 반성하게 되는 점도 많았다. 단순한 하루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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