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에 개발된 칼만 필터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센서값 보정에 사용되는 알고리즘이다... 라는 것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다. 좀 더 극적으로 상상해보자. NASA의 멤버들이 오토 파일럿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던 1959년, 스탠포드에서 전기공학 박사를 취득하고 새로이 팀 배정을 받은 슈미트 박사가 해당 연구에 합류한다. 그렇다고 마땅히 해결책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함께 1년간 머리를 싸매고 있을 뿐이었다.
나사의 시선이 "이 자식... 박사 맞아?" 하는 생각으로 바뀔 즈음, 슈미트 박사의 지인이였던 루돌프 칼만 박사가 새로운 필터를 개발했다면서 슈미트 박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한다. 슈미트 박사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이던 팀원들을 데리고 칼만 박사를 방문하고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우주선의 비선형적인 움직임을 선형 필터들로 포장하기 위해 애를 먹던 팀원들이 칼만 필터의 비선형 계산에 눈이 트인 것이다.
1961년, 존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하고, 소련과 우주 경쟁을 시작하며 아폴로 미션 역시 출범됐다. 나사와 칼만 박사는 우주 항법 계산에 보다 직접적인 활용을 위해, 컴퓨터로 계산하기 편하게끔 알고리즘을 수정한 "Extended Kalman Filter"를 활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달로 인간을 보내고, 우주 정거장을 띄우고, 제어가 더욱 정밀해져서는 한번 띄웠던 추진체를 재활용하는 기술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칼만 필터를 배운다는 것은, 살아있는 전설을 배우는 것과 다름 없다. 비록 칼만 박사와 슈미트 박사는 2016년, 2015년에 타계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필터는 아직까지도 현역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딥러닝의 시대가 도래하고 복잡한 필터를 쓸 필요없이 딥러닝이라는 블랙박스가 모든 것을 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기지만, 칼만 필터가 보장하는 "설명 가능함"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센서값을 활용할 때는 오류가 필연적인데, 딥러닝으로는 "이 오류가 왜 발생했지?" 하는 식의 질문을 해소하지 못한다... 아직까지는.
언젠가는 Kalman Filter 역시, 구시대의 산물이 될지도 모른다. 필터를 적용하느라 애를 먹던 NASA의 연구진들이 사용하던 필터의 이름은 Wiener Filter였다. 현재는 이미지 보정 등의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만, 그 역할이 이전에 비해 상당히 축소되었음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새로운 필터를 제시하는 논문의 introduction에서 스쳐지나가듯 언급될지라도, 달 탐사를 위해 개발되고 발전해왔으면서도 현재까지도 굳건히 활동하고 있는 칼만 필터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기능적 측면 이외에서도 꽤나 감동을 선사해준다. 잘 빚어진 조각상을 보면서 실물 인간을 볼 때 이상의 감동을 받는 것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트렌드 한눈에 보기 > 산업 트렌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STM 보드 고군분투기 - 3. 산업에서 사용하는 STM (0) | 2023.03.26 |
---|---|
두 편으로 이해하는 칼만 필터의 역사와 원리 - [원리] (0) | 2023.02.19 |
스타트업이 망하면 어떻게 될까? - 망해본 사람들의 이야기 (0) | 2022.07.30 |
알베르토 사보이아, "The Right It" - 사람들은 왜 실패하는가 (0) | 2022.04.24 |
런드리고는 과연 땅값 8000만 원을 없앨 수 있을까? (1) | 2022.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