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니"
저녁 10시 즈음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서 첫 마디였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가족 간 안부인사라기에는 너무 생경한 느낌이 아닌가 싶다. 가족이라면 보다 직접적인 용건을 말하거나, 그냥 안부전화일 경우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같은 인사가 적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말을 고르고 골라 어머니께서 저 멘트를 첫 마디로 정한 데에는 내가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달 전 쯤만 하더라도, 매일 같이 안부 전화를 드리고 3주 정도마다 한 번은 집에 내려갔더랬다. 하지만 요즘에는 내가 스스로 집에 전화를 건 적은 없다. 가족들로부터 전화가 오더라도 단답형으로 응답하다 최대한 빨리 끊으려고 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가족들로부터 내 정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오기 위해 인턴십을 하던 때부터 가족들은 은연 중에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왔다. 주변의 의사 아들이라든지, 돈을 잘 벌고 있는 사람들의 예시를 들며 "너도 그런 길을 갈 수 있었을 텐데" 라며 비교를 끝맺는다. 그러고서는 황급히 "너도 그래도 잘하고 있지"를 덧붙이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힘이 쭉 빠지는 것은,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부정당하기 때문이며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며 "이런 말들을 들으면 기분이 상당히 나쁩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에는 만나는 빈도도 너무 적고, 너무 오래 이런 생활을 해 왔다.
결국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깨버리고 있다. 가끔씩 가족들로부터 안부 전화가 올 때면 죄책감에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다. 이제 대학원을 졸업하고 진로를 설정할 시기에서, 가족들의 바람을 위해 살게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힘들 더라도 내 정신을 온전히 붙들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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