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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한눈에 보기/학계 트렌드

기계과 창업이 망하는 이유 - 교수 창업의 예시들

2016년 서울대 기계과 박종우 교수가 창업한 "세이지리서치"는

현재 48억 원 이상을 투자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회사설명 자료. 사실 뭐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

박종우 교수 본인의 주 연구 분야는 로보틱스, 즉 제어 측면이다.

MIT EECS(전기전자 및 컴퓨터 공학) 학사와 

하버드 응용수학 박사를 졸업해서 기계과 교수로 임용되었을 만큼

탄탄한 수리체계를 바탕으로 로봇 제어를 가르쳤고

교과서로 쓰이는 교재까지 집필할 정도로 해당 분야의 권위자이다.

 

"으음 로봇 제어분야에서 창업이라... 로봇팔을 만드나?"

세이지리서치는 놀랍게도 제어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딥러닝을 바탕으로 한 영상인식을 통해

제품의 품질을 검사하는 시스템이 주된 상품인 것이다.

 

교수 본인이 CEO로 있고, 9명의 재직자들은 대부분 

연구실 출신이거나 현재도 석박사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다.

뚜렷한 매출이 잡히는 것이 아님에도

고학력 인재들을 포진시키면서(인건비가 많이 든다)

큰 규모의 투자를 계속해서 유치할 수 있는 배경에는 

박종우 교수의 권위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이와 반대로 2005년 국내 연구실 창업 최초로 상장에 성공한

SNU프리시젼의 경우에는 

창업가이자 기계과 교수인 박희재 교수가 수십년간 운영하다가

2016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회사를 매각하게 된다.

산업기기 국산화에 성공했던 박희재 교수님

물론 회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교수가 운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한 때 25000원 선을 상회했던 주가는

3000원 대를 벗어나지 못한지도 꽤 되었다.


박희재 교수의 창업이 실패했다는 것은 아니다.

SNU프리시젼은 일본산밖에 없었던 디스플레이 제작 기기를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해서는 세계 1위 반열에도 올렸고,

한국의 디스플레이가 인정받게 된 큰 공신임에 틀림없다.

오랜 기간 회사를 운영한 끝에 성공적인 출구전략으로 매각을 선택한 셈이다.

 

다만 상장 이후 전성기에 비해 회사 가치가 현저하게 하락했고

박희재 교수의 매각 역시 회사의 불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뤄졌기에

기계과 창업의 흐름이 상당히 변했음을 절감하게 된다.

출처: 매일경제
출처: KAIST

위 두 사진 중 아래 표는 카이스트의 교원 창업 현실을 보여준다.
2019년 추가된 기업이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기계과 출신 창업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2019년 신규 창업은 단 한 건도 없다.

 

기계과가 유달리 최근들어 창업 분야에서 바닥을 치고 있는 까닭은

"데이터"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활용한 블랙박스(딥러닝)가 올바른 답을 내놓는다고 했을 때

모든 것을 공식과 행렬 계산 및 시뮬레이션으로 해결하던 기계과 교수진 중

딥러닝 분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기계과 명강으로 꼽히는 로봇공학입문

심지어 예의 박종우 교수 조차 제어 영역에 딥러닝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했던 사람인 것이다.

다만 현실을 깨닫고 재빠르게 움직였기에(안주하기 쉬운 교수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현재와 같은 좋은 성과를 내고 있을 수 있다.

 

결국 이제 기계과에서 창업을 한다고 내놓는 아이템들은

대학교에서 전혀 배우지 않았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생긴다.

언젠가 돌아보면 결국에는 점이 이어져 있더라- 하는 말을 되새기며

세계가 필요로 하는, 하지만 자신은 처음보는 분야로 뛰어드는 사람이

빠르게 변하는 창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모양이다. 


SNU프리시젼의 매각과는 별개로,

매각 후 큰 돈을 일시불로 받게 된 박희재 교수는

일부를 학교에 기증했고 "박희재 창업공간"이 새로 생기게 되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