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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여다보기/관정도서관 서재

야쿠마루 가쿠 -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생각의 깊이가 아쉬운 책

"제 딸을 살해한 놈들을 15년 후에 죽여주세요!"

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명한 책이지만, 책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우선 15년도 아니다. 저 말을 하는 사람이 존재했을 당시에는, '딸을 살해한 놈들'은 징역 15년형이 아니라 무기징역을 받은 상태였다. 게다가 문장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마치 "지금 당장이 아니라 15년 후에 죽여주세요" 라고 요청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은 "사형이 아니라 징역형을 받은 것이 말도 안되니 징역을 다 살고 나오는 순간 죽여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문구이다.


 

 캐치프레이즈의 역할이 일단 시선을 끌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뭐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셈이지만 너무 자극적으로 그려놓은 문장이 아닌가 싶다. 그것과는 별개로 책의 흡입력은 매우 좋은 편이다. 짧은 호흡을 유지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적절한 불안감 조성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하면서 "얘가 범인 같다!" "이건 복선 같다!"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한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난다는 것이다. 책의 날개에는, 아마 작가가 아니라 편집부에서 적은 문구겠지만, 이렇게 적혀있다. "죄를 한 번 저지르면 그 사람은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고 새로운 삶을 꿈꿔서도 안되는 것일까?" 여기서 나는 최근 몇 년간 연예 뉴스면을 빼곡히 채워넣은 미투와 학폭 파문을 떠올렸다. 수년 전부터 많게는 수십년 전의 일까지 꺼내와서 현재의 당사자에게 사과를 요구한다면, 당사자는 죗값을 어떻게 치러야 할까?

 

 법적으로는 "시효"라는 것이 그런 사회혼란을 막아주지만, 사람의 감정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 상처받은 사람은 아무리 흉터가 희미해지더라도 그 안에서는 계속 피가 새어나오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폭과 미투로 과거에 타인에게 상처를 준 연예인은, 공인으로서의 삶을 종료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까? 아니면 잠시 공백기를 둔 후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일까? 연예인들의 음주운전은 어떤가? 마약 복용은?

 

 이런 종류의 사회적인 고민과 딜레마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감정에 정도를 매겨서 칼로 딱 잘라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 정도의 고민까지 이어나가는 데는 실패했다. "범죄자"라고 낙인 찍혔던 사람은 결국 오해를 받고 있던 것이었고, 정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은 별다른 역할 없이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비문학 장르에서 "A는 B와 같다" 라고 주장하더라도, 독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논리야 그렇다치지만 공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인물과 스토리 상에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같은 주장을 더 많은 분량으로 보다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일 테다. 작가가 "난 전달하려는 메시지 같은 거 없었는데?" 하고 정색을 하고 나선다면야 모르겠지만, 해석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하게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 책이 충분한 고민을 하고 쓰인 책 같지가 않고, 독자로 하여금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다만 기술적인 측면은 매우 훌륭하다. 상황 묘사를 예리하게 펼쳐보이는 재주가 출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