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로보월드에 다녀왔다. 전반적인 느낌은 지난 번 헬스케어 박람회와 유사했다고 생각된다 (관련 글). 기술은 무차별적이고, 참여자의 수는 늘어나며, 저마다 기계적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환경에서, 관람객인 나마저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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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두 번의 박람회에서 유사한 느낌을 느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나에게서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 낫다고 느꼈다. 나는 생각해보면, 자신을 홍보하는 꼴을 못봐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은근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멋이라고 느끼기에, 이런 박람회에 올 때마다 거부감을 느끼는 것인가, 나는 몹쓸 힙스터 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애플이 1976년 나무로 만든 컴퓨터를 들고 나왔었던 그 박람회 현장에 있었더라도 나는 혀나 차면서 지나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반성했고,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산업 트렌드를 바라볼 수 있었다. 무차별적이라는 기술들은, 어디까지나 내 기준으로 본 것이고, 다들 나름나름으로 다른 기술들을 들고 나왔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한 가지는 주제가 명확하다는 것일테다. 예컨대 올해 로보월드의 가장 큰 주제는 "로봇팔의 적용"과 "patrol 로봇"이었다. 작년에도 그랬다고? 그럴 수도 있다.
위 부스 배치도를 보면 가장 먼저 현대 위아가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 배치용 로봇을 전시해놓은 탓에, 거대한 공간을 빌려야 했다.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서 자동차를 이리 저리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을 전시중이었다. 상당히 매끄럽게 제어되면서도, 무거운 물체를 안정적으로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HD 현대, KIMM 등의 이름들이 눈에 띄며, 이들은 모두 로봇팔을 전시 중이었다. 자체 개발했거나, 이미 개발된 UR 등의 로봇팔을 활용해서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겠다" 정도의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내 심정이 이해가 가는가? 입구서부터 끝없이 늘어선 로봇팔의 향연. 뭐가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뭐 다 똑같은 거밖에 없담" 하고 투덜거리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로봇팔의 접근성이 그만큼 좋아졌다고도 볼 수 있다. 보다 더 넓은 공정영역에 들어가든가, 커피를 내리는 등의 일상 생활로도 침투하든가.
그렇게 기술의 접근성이 높아지면 발생하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는 새로 시장에 접근하려다 보면 여기 저기 숨어있는 돌부리, 특허권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접근성만큼이나 공개되어야 하는 것이 누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특허 문건은 웬만해서는 쉽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걸 쉽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 문제는, 과연 접근성이 높아진만큼 시장도 해당 기술을 원하는지의 여부이다. 예를 들어 로봇팔을 활용한 바리스타 로봇의 접근성이 상당히 높아진다면, 모든 카페에 과연 로봇팔이 들어설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공학은 참 미묘해서, 본말전도가 발에 차일만큼 많이 발생한다. 손에 망치를 쥔 공학자들이 넘치다보면, 주변의 모든 튀어나온 것들이 망치를 맞는 법이다. 이럴 때는 명확하게 시장의 수요를 파악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웨어러블 로봇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박람회에서도 KIST, 티로보틱스, 헥사휴먼케어 등 다양한 기업에서 유사한 폼팩터의 기기를 들고나왔더랬다. 도대체 웨어러블 로봇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각 기업들이 가진 기술 특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가? 과연 사람들은 웨어러블 로봇을 필요로 할 것인가? 박람회에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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