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생활 들여다보기/뇌 속 풍경

코난 오브라이언, 장도연과 "실수 효과"

박진영이 설명하는 코난 오브라이언

 

 박진영은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코난 오브라이언의 개그 철학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바로 "자신을 망가뜨리고 게스트를 높이면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막상 코난 TV쇼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장면들도 더러 있다만, 정말 유쾌한 웃음을 선사해주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에도 같은 유머 코드를 지닌 코미디언이 많이들 있다. 당장 생각나는 예시는 장도연이다. 한 시상식에서 초대가수인 블랙핑크가 제 시간에 오지 않자, 주최즉이 바로 직전 수상자인 장도연에게 "시간을 좀 많이 써달라"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다. 곱씹어보면 꽤나 무리한 (혹은 무례한) 부탁일 수도 있지만, 장도연은 굉장히 능숙하게 해당 역할을 해냈다. 끊임없이 자신을 망가뜨려가면서.

 

패션 시상식에서의 장도연

 

 "실수 효과"라는 것이 있다. 아직도 읽고 있는 넷플릭스: 규칙없음 책에서 소개된 문구인데, 한 분야의 전문가가 일상에서 잦은 실수를 범하면 그 역시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효과이다. 코난 오브라이언도 그렇고, 장도연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유머 센스는 탁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간 기록을 통해 능히 알 수 있다. 그 와중에 자신을 낮출 수 있는 미덕을 갖췄으니 이렇게 이따금씩 찬양받고는 한다.

 

 하지만 그 실수 효과에는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 있다. "전문가가 실수를 저지르면 매력적이다" 라는 명제의 '이' (p->q 와 ~p->~q의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전문가가 실수를 자꾸 저지르면 볼품없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되고만다. 한 여성이 강연을 하면서 "아, 평소에 아이를 보면서 실수를 너무 많이 합니다" 라며 그간의 실수를 나열한다면, 보는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저런 사람이 강연 자리에 와있지' 하며 투덜댈 것이다. 하지만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본인을 노벨상 수상자로 소개한 뒤 저런 멘트를 하면 '거 참 유쾌한 사람이군!' 하며 환호할지도 모른다.


 대학교 1학년 즈음, 처음으로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을 때는 자조적인 유머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살짝씩 조롱하며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스스로를 낮출 수 있는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혹은 술자리의 분위기에 휩쓸려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도 전해진 나의 자조적인 멘트들은 말 그대로 '저 사람 좀 이상하군' 하는 생각을 심어줬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요즘 나의 유머코드는 사람(타인이든 본인이든)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신박한 관점들을 활용해서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주를 기르는 중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불킥이 심각한 상황이라면, 침대 맡에 샌드백을 둬서 운동효과라도 가지세요' 하는 멘트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